국수주의 판결 수두룩 “안방에선 질 수 없다”
국수주의 판결 수두룩 “안방에선 질 수 없다”
  • 정다운 기자
  • 호수 9
  • 승인 2012.09.1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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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파트1] 삼성-애플 소송으로 본 보호무역주의

 
8월 24일. 삼성전자와 애플코리아가 “특허를 침해당했다”며 서로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법원은 양사의 특허 침해를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삼성이 제시한 특허기술 5건 중 2건을 애플이 침해했다고 인정했다. 해당 2건의 특허는 코드분할다중접속 관련 기술(비-스케줄링 전송 특허 975특허)과 무선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900특허)이다.

삼성의 특허 침해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애플이 주장한 특허기술 10건 중 ‘바운스 백’ 특허를 삼성이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터치스크린 화면을 이용할 때 맨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면 화면이 용수철처럼 튕기는 기능이다. 재판부는 “애플은 삼성에 4000만원을 배상하고 관련 제품의 판매 수입 등을 금지하며 관련 제품을 폐기하라”고 명령했다.

20시간 뒤인 24일(현지시간, 한국시간 25일).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 연방 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애플이 제기한 7건의 특허 침해 내용 중 디자인 특허 3건과 기술 특허 3건을 인정했다.

디자인 관련 법안은 총 4건으로 그 중 아이폰 전면부 디자인, 둥근 모서리와 홈 버튼, 검은색 바탕의 아이콘 배열 3건을 인정받았다. 태블릿PC에 대한 디자인 특허는 인정되지 않았다.

 
미국 법원은 삼성이 바운스백, 핀치 투 줌 등 애플의 상용특허 3건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삼성이 제소한 5건의 특허침해는 하나도 인정되지 않았다. 9명의 배심원단은 “삼성은 애플에 10억4939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보호주의 판결 양국 똑같아

양국은 뒤집혔다. 한국의 언론은 “애플의 국수주의적 판결에 삼성 당하다”“애플 동네 사람들이 삼성에 1조원 배상하게 만들어”“애플의 앞뒤 가리지 않는 보호무역주의” 등의 기사를 쏟아내며 불쾌한 심기를 들어냈다.

재미있는 것은 외신들 역시 24일 한국 법원이 내린 삼성의 판정승에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외신들은 한국 법원 판정 중 ‘표준특허 기술’ 관련 이슈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미 지역신분인 리치몬드타이즈 디스패치는 8월 24일(현지시간) “한국 법원의 판결에 우려를 표명하는 업계 전문가들이 많다”며 “산업 기술 표준을 보호하기 위해 내려진 이번 판결로 무역 전쟁이 초래될 수 있으며 한국시장에 진입하려는 경쟁사들의 진입을 막는 불공정한 처사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AP통신은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의 유럽에서는 애플이 삼성전자의 무선 통신기술을 침해했다는 주장이 기각된 바 있다”고 전했다. 기각 이유는 삼성의 통신기술이 경쟁자에게도 공정하게 허가돼야 하는 기술 표준에 해당해서다. 이어 두 통신사는 “이런 이유로 삼성이 한국 소송에서 통신 표준 기술로 승소한 것은 안방(home territory)의 후광을 입은 이례적 승리(rare victory)”라는 보도를 냈다.
 

실제 양사의 홈그라운드에서 극단적 결과가 나온 배경에는 디자인 이슈 외에도 표준기술 특허가 있다. 애플은 미국 재판에서 삼성이 주장한 애플의 통신표준특허 5건의 침해 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아 일방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반대로 한국 재판에서 삼성은 표준기술 특허 2건이 인정된 덕분에 판정승을 거뒀다.

그 증거로 양국 법정 소송에 공통으로 제기 된 표준 특허인 900특허(미국 특허 941)를 들 수 있다. 무선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인 900특허를 미국은 인정하지 않았고 한국은 인정했다. 양국 모두 표준특허를 자국에 우호적인 도구로 끌어다 판결하는 데 사용한 셈이다.

표준특허는 특허법상 아주 예민한 문제다. 공정거래법•반독점법과 연결돼서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공정거래법 위반 시 엄격하게 제재한다. 업계 표준으로 사용되는 기술을 가지고 경쟁사를 공격하면 경쟁사를 시장에서 추방해 독점하려는 의도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시장균형 유지와 특허권자의 권리남용을 막는 프랜드(FRAND) 조항으로 한미 소송전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

▲ 국내 법원이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일부 제품의 국내 판매 금지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국내 소비자가 서울의 한 판매점에 전시된 애플 제품을 보고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표준 기술을 필두로 한 삼성의 애플 공격은 국제적으로 좋은 인식을 심어주고 있지 못하다. 삼성 입장에서는 기술 자신감을 근거로 한 당연한 주장이었지만 국제적 관점의 차이가 큰 것이 사실이다. 2011년 10월 네덜란드 재판에서 삼성전자가 표준특허권자로서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판결로도 알 수 있다. 이 일로 삼성전자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가리는 조사까지 당했다.

이런 상황은 기술력을 필두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에 악재다. 이번 미국의 판결로 표준특허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표준기술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된다. 적합한 가치를 인정받고 로열티를 보장 받기는커녕 침해 받아도 소송이 불리한 표준특허 개발에 사력을 다할 기업은 줄어들 것이다. 이는 곧 기술의 퇴보를 의미한다.

국내 특허 전문가들은 “앞으로 삼성이 마주하게 될 소송전에서 자사의 표준 특허기술이 스마트폰 구동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번 국내 판결처럼 무작정 “삼성이 표준기술을 이용해 시장에서의 독점을 강화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할 수 없다”고만 주장해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독일의 특허전문가 뮐러(Florian Mueller)는 “이번 판결로 외국의 기업들은 삼성과 LG이 요구하는 조건으로 표준기술 협상에 복종해야 하거나 극단적으로는 한국에서의 판매를 중단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뮐러의 우려가 세계 표준일 수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것이다.

표준 특허 이슈에 대비해야

특허권 소진(Patent Exhaustion) 이슈도 국내 기업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미 법원 배심원들은 애플이 삼성전자의 무선통신 특허를 침해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특허 사용 계약을 한 업체의 부품을 애플이 구매한 것으로 그 과정에서 삼성의 특허는 이미 소진됐다는 것이 전제였다. 앞서 네덜란드 소송전에서도 애플의 특허권 소진 주장이 인정되는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다.

한미 양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국의 시선에서 이번 판결의 ‘공정무게’를 가늠해볼 수 있겠다. 영국의 대표 언론인 데일리메일은 국내 평결 직후 ‘애플 삼성 양측이 서로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중립적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한국 법원이 삼성을 돕다’라는 제목의 편파적일 수 있는 기사를 보도한 것과 대조적이다.

데일리메일은 24일자(현지시간) 보도에서 “9개국에서 진행되는 소송을 진행하며 삼성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원하던 판결문을 얻었다”라고 보도했다. 표준 기술관련 소송을 인정한 것에 대해 비판적 견지를 표현한 것이다.

또 AP통신 정우성 특허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홈그라운드에서 얻은 승리”도 부인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 사실은 삼성전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사 판결에 동일하게 적용된 홈그라운드 메리트에 집착하기 보다는 표준 기술에 대한 세계 표준적 시각을 가지고 재정비가 필요할 듯싶다.

정다운 기자 justonegoal@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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