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가로막는 철책 특허로 뛰어넘어야
무역 가로막는 철책 특허로 뛰어넘어야
  • 심하용 기자
  • 호수 9
  • 승인 2012.09.10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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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파트2] 보호무역주의 돌파하려면…

 
글로벌 불황 탓일까. 세계경제에 ‘보호무역 바람’이 다시 일고 있다. 경기부양이라는 눈앞의 이익만 좇는 자국 이기주의가 뚜렷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보호무역의 칼날이 국내기업에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7월 프랑스 정부는 자국 자동차 산업 활성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점유율이 급증한 현대·기아차에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 조항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이 계획에 따라 8월 3일 EU에 한국산 자동차 수입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작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세이프가드는 FTA를 체결한 당사국에서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할 때 그 품목의 관세를 다시 높이는 것이다.

 
8월 21일 미국 법무부가 삼성SDI·LG화학 등 2차전지 생산업체 4개사를 대상으로 소형 전지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회사는 글로벌 2차전지 시장의 톱 4로 세계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2차전지 업계는 이번 조사에 대해 삼성SDI·LG화학이 일본과 미국 업체를 누르고 미국 내 선두 업체로 부상한 데 따른 견제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최대 2차전지 생산업체인 에너원은 국내 업체들에 경쟁력에서 밀려 경영이 악화돼 2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또 다른 유력 2차전지업체인 A123시스템도 최근 중국기업에 매각됐다.

글로벌 불황으로 전 세계에 ‘신보호주의’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자유무역확대가 경기침체의 터널을 벗어날 탈출구라는 점을 알면서도, 눈앞의 경기부양을 위해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올해 7월 열린 한 경제포럼에서 “최근 보고에 따르면 세계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보호주의가 증가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그런 조치들은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2차전지 견제하는 미국

문제는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삼성·현대차·LG 등 한국 기업들이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8월 24일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에서 미국 법원 배심원들이 애플에게 일방적인 승리를 안겨 준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미국·중국·인도·브라질 등 주요 교역 상대 20개국이 한국기업에 대해 수입규제조치를 취한 건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17건에 이른다. 연간 10건 미만에 불과하던 수입규제조치는 지난해 16건으로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는 그 숫자를 넘어섰다.

 
해외에서 수입규제를 위해 조사를 받고 있는 한국 상품은 2차 전지·세탁기(미국), 철강 (EU·브라질·캐나다·호주·인도네시아), 변압기(캐나다), 종이(대만), 섬유(브라질), 타이어(브라질) 등으로 종류가 다양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이동근 상근부회장은 “세계 각국이 선거를 앞두고 경기침체의 대책으로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일고 있는 신보호주의는 과거 보호주의 정책과 다른 특징이 있다. 우선 최근에는 적극적인 FTA를 통해 자유교역을 확대시키면서 동시에 각종 규제로 자국 산업의 보호에도 집중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FTA를 가장 활발히 추진하는 나라지만 동시에 외국기업에 대해 강력한 규제조치도 남발하고 있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FTA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FTA로 한국산 제품의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보호무역규제 역시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의존도 지나치게 높아

규제수단이 다양해진 것도 특징이다. 전통적인 관세·비관세 장벽 외에도 인위적 환율조성, 고용보호법 입법, 기업세제 혜택부여, 수출세 환급 등의 우회적인 수단이 자국 산업 보호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전보다 정부개입 범위가 확대되고 강도가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특징은 신흥국들의 보호무역규제가 늘어난 것이다. 과거 한국기업에 대한 견제는 주로 선진국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8월 1일 발간한 ‘신흥국 보호주의 확산과 시사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요 신흥국의 보호무역정책은 러시아가 총 57건으로 지난해 50건보다 늘었다.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인 아르헨티나와 인도도 각각 30건, 18건으로 무역장벽을 두텁게 쌓고 있다.

신흥국들은 유럽발 재정위기로 경제성장률 둔화를 겪고 있지만 2009년과 같은 경기부양책은 실행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들 신흥국의 정부가 경제저성장의 대책으로 보호주의 정책 강화를 선택한 이유다.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한국경제에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한국은 수출주도형 국가다. 특히 2000년대 초반까지 70%대 수준을 유지하던 무역의존도는 최근 급격히 상승해 지난해 113.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무역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을 경우 세계경제상황과 동화돼 대외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 침체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수출이 부진하면 한국경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까닭이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수출전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8월 14일 관세청이 발표한 ‘7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7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8% 감소한 446억 달러를 기록했다. 무역수지 흑자는 27억6000만 달러 절반 가까이 큰 폭으로 줄었다.

수출 감소는 경제성장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은 33개월 만에 최저치인 2.4%로 가라앉았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조정했지만 외국계 투자은행은 2% 성장마저 불투명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러한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쉽게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은 “올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미국 등 주요국에서 선거가 있는 해로 보호주의 압력이 더욱 거세지고 국제공조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정치적인 문제로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개선책에 대한 협상 자체가 어렵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보호무역 바람에 대비해 사전 예방책은 물론 사후 대응책까지 완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합적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수집해 보호주의가 예상되는 품목에 대해 주기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각 업체별 수출통계 분석, 마진분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특허 방어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허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들도 키워야 한다는 애기다. 2000년대 들어 특허소송이 급증하고 있고 외국 기업과의 특허소송에서 확실한 법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자국 산업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키움증권 이승욱 연구원은 “우리나라 기업의 특허소송 승률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며 “특허 소송 손해배상은 특히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적 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무역제한조치가 취해졌을 때, 국제적 공조가 탁월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올해 6월 멕시코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2008년 전 세계가 공조해 보호무역주의를 지양하고 무역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며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보호무역은 경계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도 이런 관점에서 나온 발언이다.

 
신흥국 보호무역 심해져

정부도 직접 나서 대응책을 찾고 있다. 정부는 최근 해외 155개 재외공관에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수입규제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또 외교통상부 수입규제반을 풀가동해 제소를 당한 기업에 대해 직간접적인 지원을 벌이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에 입각한 한국 기업 견제에 대해 민·관이 힘을 합해 대응책을 찾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갈 길은 아직 멀다. 유럽 재정 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 글로벌 불황은 길어질 전망이다. 이럴수록 세계 각국은 보호 장벽을 더욱 두텁게 쌓고 한국기업의 앞길을 막아설 가능성이 크다. 위기는 코앞에 다가왔다.

심하용 기자 stone @ thescoop.co.kr |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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