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웃었지만 전기차는 울었다
MB는 웃었지만 전기차는 울었다
  • 박용선·심하용 기자
  • 호수 8
  • 승인 2012.08.29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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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진 저속전기차

▲ 2010년 9월 현대차의 고속전기차인 ‘블루온’의 첫 시승회가 청와대 앞뜰에서 열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시승하고 있다.
“전기차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각 정부부처가 발 벗고 나섰다. 당장이라도 거리엔 전기차가 넘쳐날 것 같았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던 저속전기차 생산업체는 대부분 사라졌다. 대책이 필요하다.

 
2009년 초 세계 5대 모터쇼로 꼽히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눈길을 끄는 차가 등장했다. 국내 중소기업 CT&T가 개발한 저속전기차였다. 모터쇼에 직접 참가해 CT&T의 전기차를 눈여겨 본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정부부처가 발 벗고 나섰다. 지식경제부는 전기차 업체를 선정해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국토해양부는 전기차의 안전성 검사를, 환경부는 이를 보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부 지원이 시작된 시점의 분위기는 좋았다. 기존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저속전기차는 차량으로 등록도, 도로를 달릴 수도 없었다. 국토해양부는 이 자동차관리법을 대폭 수정해 제한속도 60㎞ 이하 구간에 저속전기차가 진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저속전기차를 위한 전용표지판도 설치했다. 환경부는 보조금 지원책 준비에 들어갔다.

언론도 한몫 거들었다. 전기차를 테마로 한 기사를 연일 쏟아냈고,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CT&T의 저속전기차 ‘e-Zone’ 시승식에 참여한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당장이라도 한국의 도로에는 전기차가 넘쳐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상황이 이쯤 되자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들이 꿈틀댔다.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 ‘블루오션’을 정부가 팍팍 밀어준다고 하니 그럴 법도 했다. 골프장 전기카트 생산업체였던 CT&T가 가장 먼저 저속전기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CT&T 이영기 대표는 2012년까지 미국과 피지 등에 연산 5000~1만대 단위의 소형 조립 공장 40곳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대규모 투자에 들어갔다. 자동차 부품업체였던 AD모터스, 컨트롤러나 리모컨을 생산하던 지앤디윈텍 등도 저속전기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투자처가 생기자 이번엔 개미(소액투자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전기차 테마주로 분류되기만 하면 연일 상한가를 쳤다. 이런 축제분위기가 금세 수그러들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2012년 현재 저속전기차의 붐은 모두 사라졌다. 한때 주가가 2000원을 넘나들었던 CT&T와 지앤디윈텍은 올 들어 상장폐지됐고 공장도 멈춰섰다. 정부의 정책과 언론의 보도만 믿고 투자를 한 개미들의 손에는 휴지조각이 된 주식만 남았다. 현재는 AD모터스만이 명맥을 유지하며 저속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AD모터스 역시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주가가 200원대까지 폭락한 상태다.

흔들리는 전기차 정부 정책

 
왜 저속전기차 붐은 사그러든 것일까. 이유는 복잡하고 많다. 첫째는 흔들리는 정부 정책 방향이다. 정부는 전기차 사업의 방향을 크게 ‘저속’과 ‘고속’으로 나눴다. 저속은 근거리 전기자동차(NEV·Neighborhood Electric Vehicle), 말 그대로 근거리에서 석유 연료와 엔진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전기자동차를 뜻했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중소기업 업종으로 가닥을 잡았다. 고속은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의 대체 차량으로 보다 장기적으로 내다봤다. 이 프로젝트에는 현대차 등 대기업이 참여하길 기대했다.

이렇듯 정부는 사업 초반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진출 분야를 구분하며 성장 방향을 제시했다. 당시 미래 친환경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사업이라고 각광받았다.

2010년 9월 현대차의 전기차 ‘블루온’이 공개되면서 정책방향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저속전기차 출시 때와 마찬가지로 블루온 발표식에 참석했고, 청와대 경내에서 시승 행사를 가졌다. 이후 현대차 위주의 지원·육성책이 본격 시작됐고, 저속전기차 업체는 떨거지 신세가 됐다.

저속전기차의 입지가 좁아진 둘째 이유는 60㎞ 규정이었다. 저속전기차를 위해 60㎞ 이하 구간을 별도로 설정한 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안전을 문제로 60㎞ 이하로 달리게 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정작 70㎞, 80㎞ 도로에서 달릴 수 없게 된 것이다.

AD모터스 관계자는 “서울 시내 남부순환로, 시흥대로,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한강교량 등의 진입이 불가하다”며 “사실상 국내 주요 도로에서 달리는 것이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AD모터스는 이 부분에 대해 완화를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출시되고 있는 저속전기차에 대한 안전 기준을 완화하거나 면제한 부분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안전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지원금이 중소기업이 아니라 현대차에 쏠린 것도 저속전기차의 질주를 방해했다. 현대차 블루온은 2010년 2월부터 12월 까지 약 1년 동안 지경부로부터 연구개발비 120억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전기차 개발에 있어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중소기업이 지원 요청했을 때는 ‘아직 시기가 아니다’며 한 발 물러섰다.

 
또 현대차는 지난해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진행되는 준중형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지경부로부터 현재까지 345억원을 지원받았다. 현대차는 2015년 하반기 준중형급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저속전기차 지원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지경부 관계자는 “저속 전기차는 미래 성장이 불투명하다”며 “일반 소비자들이 원하는 즉, 수요가 있는 전기차를 만들어야 하는데 저속전기차는 이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설명했다. 시장성을 보고 사업 지원한다는 것이다.

배효수 전기차협회 사무국장은 지경부의 답변에 의문을 제시했다. 그는 “저속전기차는 기존 휘발유 차량의 대체가 아닌 틈새시장으로 가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속도가 느리니 기존 차량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정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관광용, 실버타운, 친환경 타운 등에 저속전기차를 공급해야 한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은 환경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CT&T의 ‘e-Zone’, AD모터스의 ‘체인지’ 등 저속 전기차가 판매되던 2010년에는 보조금 지원이 없었다. 하지만 2010년 9월 현대차 블루온이 개발되자 약속이나 한 듯 2011년부터 보조금 정책을 시작했다.

정부가 이처럼 대기업과 손을 잡으면서 저속전기차 생산업체들은 판로를 잃었다. 정책적으로 산업을 육성하는 초기단계에서는 주 판매처가 관공서로 좁혀질 수밖에 없지만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현대차의 블루온, 기아차의 레이의 공세에 밀려난 것이다.

실제로 250대로 한정 생산한 블루온은 250대 전량 관공서가 사들였다. 반면 체인지의 판매는 67대에 그쳤다. 올해는 더욱 문제다. 관공서가 올해 도입하려고 계획하는 전기차 대수는 2000대로 기아차 레이의 생산목표인 2500대 보다 적다. 이미 체인지의 구매의사를 보였던 많은 지자체도 레이로 돌아선 상황이다.

AD모터스의 관계자의 한탄이다. “전기차 시장의 경쟁은 정부의 보급량 안에서 포지션을 가져가는 싸움이어서 정부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정확히 레이의 생산계획만큼만 보급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우리는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막다른 골목에 선 저속전기차 생산업체들은 관공서에서 일반인으로 타깃을 확장할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 관공서와 달리 정책적으로 전기차를 구입할 필요가 없는 일반인의 반응이 싸늘해서다.

저속전기차가 시장에서 외면 받을 만한 이유도 사실 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AD모터스의 체인지 가격은 2100만원으로 일반 경차의 두배에 가깝다. 일반인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련 법에 따르면 전기차를 구입했을 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주체는 행정기구 뿐이다.

▲ 2011년 3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오토메이션월드’에서 관람객들이 CT&T의 전기차를 둘러보고 있다. 올 들어 CT&T는 상장폐지 됐고, 공장은 가동이 중단됐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불편한 점도 많다. 주행거리가 70㎞로 무척 짧다. 방전됐을 때 완전히 충전하려면 6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충전소가 많은 것도 아니다. 더구나 서울 시내 주요 길목 곳곳에 박혀 있는 저속전기차 진입금지 문구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뚝 떨어뜨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시장을 조성할 의지가 전혀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부가 입으로는 정책적으로 육성한다고 하면서 진입 구간 제한, 민간인 판매는 보조금 미지급 등의 규제로 저속전기차 시장을 죽이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정부는 저속전기차를 살리기 위한 후속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올 5월 저속전기차 업체의 한숨소리를 들은 박재완 재정부 장관의 지시로 재정부·국토부·지경부·환경부 4개 부처 담당자들이 저속전기차 제한속도의 상향조정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했다. 여전히 안전성이 문제였다.

 
저속전기차 업체는 청와대, 관련 부처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현재 시장상황과 어려움을 전했지만 하나 같이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AD모터스 관계자는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면 받아들이고, 기한을 정해서 수정·보완해 나가겠다”며 말을 계속했다. “저속전기차 시장의 성장성을 보고 이 산업에 뛰어들었다. 걸음마 수준이었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정부가 분위기를 그만큼 띄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진출하니 정부의 태도는 ‘지원’이 아닌 ‘차단’이었다. 2010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똑같은 문제로 업체가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정부의 앞 뒤 맞지 않는 정책으로 중소기업만 죽어나갔다는 얘기다.

전기차 시장 대기업만 남아

전기차 사업으로 친환경과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이끌어내겠다고 공언했던 이명박 대통령. 하지만 이 말과 달리 전기차 시장엔 중소기업은 없다. 오직 대기업만 둥지를 확고하게 틀고 있을 뿐이다.

2010년 9월 이 대통령은 현대차 블루온을 시승한 직후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만든 전기차가 (일본 것보다) 더 우수하다면 대단한 결과다 … 이번 전기차가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만들었고,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는 모습에 의미가 있다 … ” MB는 웃으면서 이 말을 던졌지만 저속전기차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용선·심하용 기자 brave11@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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