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반동적 태도 없애면 혁신일까
![보수를 보수補修하면 수구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독일과 상태한 국가대표 축구팀처럼 모든 걸 바꿔야 한다.[사진=뉴시스]](/news/photo/201807/30896_37566_138.jpg)
6ㆍ13 지방선거를 며칠 앞두고 어느 기업 회장이 기업인들과의 저녁자리에서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중 ‘아직도’ 자유한국당을 찍는 사람이 있을까요?” 필자는 골수 보수 지지자인 그의 웃음기 없는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했다. 아니다 다를까 결과는 보수의 참패였다.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많은 축구전문가들은 한국이 16강은 고사하고 1승도 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다. 어느 외신은 한국이 독일을 이길 확률은 1%에도 못 미친다고 조롱 섞인 전망을 했다. 2002년 월드컵 대표선수였던 이영표 해설위원은 “한국인은 축구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기는 축구를 사랑한다”고 일갈했다.
한국팀은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대회 우승국이자 FIFA 랭킹 1위인 독일을 2대0으로 눌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한국이 16강에는 아슬아슬하게 탈락했지만 독일을 이겼으니 ‘17강’이고, 앞으로 독일의 축구꿈나무들이 자기 나라를 이긴 한국으로 축구 유학을 올 것이라고 자랑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축구는 둥그런 공처럼 예측이 잘 맞지 않는다. 체력과 개인기 못지않게 이기겠다는 투지와 팀워크가 중요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자세로 독일과의 경기에 나선 한국 축구가 그랬다. 반면 ‘전차군단’으로 불리는 독일팀은 경기종료 직전 골키퍼가 골문을 비운 채 공격에 가담하다가 손흥민에게 추가골을 선사하고 자멸했다. 전차부대 운전병이 교전 중 자리를 이탈한 셈이다. 아마 부지불식간에 한국팀을 무시하는 마음으로 대비를 소홀히 한 듯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친노’는 폐족 취급을 받았고 보수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도는 법.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보수는 구제불능으로 전락했다. 후반 경기 종료 직전 2골을 터뜨린 한국 축구를 보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점에서 정치와 비슷하다.
이번 지방선거 실패 책임을 두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대표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은 것을 보면 리더의 전략이 중요하다는 점도 닮았다. 오만하면 반드시 실패하고, 절치부심하며 노력하는 쪽에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짓는 점도 빼다 박았다.
한국 축구는 축구협회를 중심으로 파벌이 여전하고 개혁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거세다. 그러나 독일전을 앞두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집념으로 팀워크를 정비하고 작전을 바꿨다. 경기종료 휘슬이 불 때까지 투혼을 발휘했다. 한국팀의 선전은 취업난에 좌절하는 젊은이나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한국인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성공한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 땅의 보수는 보면 볼수록 국민을 더욱 화나게 한다. 마치 조선시대 노론과 같다. 집요하게 권력쟁취에만 몰두할 뿐 비전이 없다. 쇄신 방안이라고 내놓은 게 담벼락이 갈라졌는데 벽지만 새로 바르는 격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은 수습방안으로 중앙당을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잘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비대한 중앙당 조직만 문제였던 것처럼 말한다. 중앙당만 구조조정하고 당명만 바꾸면 수구반동적인 구태에서 벗어나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엄밀히 말하면 자유한국당의 궤멸은 수구세력의 패배일 뿐 한국 보수의 몰락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의 실패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부역했던 친박세력과 결별하지 못하고 새누리당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촛불혁명의 정신을 매도할 일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를 수용한 ‘진짜 보수’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보수를 보수補修하는 데 그치면 수구반동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진보가 놀랄 정도로 더 공정함을 추구하는 대담하고 포용력 있는 보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이순신 장군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삭탈관직됐다가 백의종군한다.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과 두려움에 가득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330척의 왜적이 숨통을 조여오자 이순신은 치밀한 전략으로 적들을 여수 앞바다 명랑으로 끌어들여 대승을 거둔다. 한국 보수의 12척은 무엇일까. 다시 일어나겠다는 불굴의 정신과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지겠다는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 아닐까, 이런 자세가 보이지 않으니 한국 보수는 축구팀 보다 못하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