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사랑 꿈꾸는 자 모두 무죄
결혼 후, 사랑 꿈꾸는 자 모두 무죄
  • 이재은 커리어 & 연애칼럼리스트
  • 호수 5
  • 승인 2012.08.10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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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Clinic

 
얼마 전 한 모임에 갔다가 재미있는 제안을 받았다. 기혼 남녀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소울 메이트’ 찾아주기 비즈니스를 구축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발칙한(?)’ 의견이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연애 강연과 토크쇼를 기획하고부터 적잖은 기혼자들이 이 같은 바람을 전해왔다는 것이다.

“꼭 싱글들만 이성친구, 소울 메이트 사귀란 법 있나요? 우리도 아직 청춘인데 말이에요.”
 

‘오피스 스파우즈’(사무실 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성 동료)보다 한 단계 친밀한 정서적 교류를 원하는 ‘소울 메이트’를 부르짖는 그들의 상기된 얼굴엔 사랑을 꿈꾸는 설렘이 역력했다. 결혼한 사람들의 사랑을 향한 갈망, 대체 어떻게 바라봐야하는 걸까?

결혼한 지 만 4년이 지났다. 코를 골고 얼뜨기처럼 입까지 벌리고 자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묘한 포근함과 함께 우울함을 느낀다. 죽을 때까지 살을 부비며 살아갈 내 식구가 생겼다는 든든함과 더 이상 영화 속 주인공처럼 찬란한 사랑을 불태울 수 없다는 좌절감이 교차하는 탓이리라.

어쩌다 호감이 드는 남자를 만나도, 차 한 잔 하자는 싫지 않은 남자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도, 말 잘 통하는 소울 메이트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져도 할 수 있는 거라곤 별로 없다. 그저 ‘신사의 품격’ 남자주인공인 장동건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러다 신세가 처량하다고 느껴질 때면 울분이 밀려온다.

‘사랑에 통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통기한이 설정돼 있는 것도 아닌데, 기혼녀라는 이유로 사랑을 희망하는 마음조차 금지당하는 건 너무 억울한 거 아니야?!’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부일처제에 대해 강한 의문과 반기를 제시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 인아는 멀쩡히 살아 있는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아무렇지 않게 결혼을 해 두 남자 사이에서 두 집 살림을 하며 아이까지 낳는다. 쿨 하게 이혼하고 두 번째 남편과 재혼하면 될 것을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첫 번째 남편도 사랑하고 갑자기 찾아온 두 번째 사랑도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소설 속 여자주인공의 선택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소설을 통해 결혼 후에도 사랑의 유혹이 찾아올 수 있다는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했다는데 약간의 의미부여를 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 결혼 후에는 하나의 사랑만을 유지해가는 것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이다. 그것은 어쩌면 배우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마땅한 권리일지 모른다. 충분히 사랑받을 권리,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권리,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지 않을 권리 등 말이다. 우리 사회의 법 역시 가정생활의 파탄을 일으킨 자를 처벌하는 보호 장치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고 해서, 법적으로 한 남자에 속해 있다고 해서, 더 이상의 사랑이나 떨림은 없다고 스스로를 억압하고 사랑을 꿈꾸는 마음 자체를 ‘나쁘고 못된 것’이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랑의 기초」의 저자 알랭드 보통이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는 자본주의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더더욱 낭만적 사랑에 매달린 채 동경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가장 원초적이고 본연적인 욕망, 즉 사랑하고 사랑받는 낭만적 감정을 좇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사랑을 위해 결혼을 하고, 이혼을 선택하기도 하는 현대 사회 인간에게 사랑은 또 다른 이름의 ‘신’이다.

문득 「위험사회」의 저자인 울리히 벡 뮌헨대학 교수(사회학과)의 말이 떠오른다.

“사랑 문제에 대해 공정하고 진실 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결할 수 있는 재판관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재은 커리어 & 연애칼럼리스트 w_school@naver.com|「여자 life사전」「왜 그녀들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걸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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