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 혁신의 사전적 의미다. 멈춰 있으면 혁신이 아닌 수구다. 서울혁신파크의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더스쿠프(The SCOOP)가 찾아간 서울혁신파크는 지난 겨우내 계속 멈춰 있었다. 이름값을 못했다는 얘기다.

“2017년 서울혁신파크를 찾은 방문 건수는 총 163건, 방문자 수는 3000명을 넘겼다. 2016년의 69건, 1443명의 2배를 넘는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발표한 내용이다. 이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서울혁신파크의 발걸음은 경쾌한 듯하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서울시가 내놨던 빅피처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다.
서울혁신파크의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미래청(옛 질병관리본부 본관에 위치)’ 주변부터 보자. 미래청 옆 공터엔 짓다만 것 같은 비닐하우스 가건물이 볼품없이 둥지를 틀고 있다. 바깥에 둘러친 비닐들은 바람에 휘날리고, 내부에는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더미가 건축 부자재와 함께 나뒹군다. 면적도 제법 커서 가건물 하나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용도는 짐작 불가다.
그 맞은편에 있는 컨테이너 가건물도 마찬가지다. 내부엔 이전 입주자가 남기고 간 집기와 책, 정체를 알 수 없는 제품들, 간단한 살림살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컨테이너들 사이에 있는 마루구조물 위에는 플라스틱 팔레트와 건축 부자재가 쌓여 있고, 건축 부자재는 대충 천으로 덮여 있다. 입주자가 나간 지 족히 몇개월은 돼 보이지만, 누구도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다. 서울시 재산이니 함부로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 하나 없다.
컨테이너 가건물 옆으로 보면 전면이 유리로 된 육각기둥 모양의 부스가 있다. 속이 훤히 보이는 내부엔 LED 전등 몇개와 LED 전등 소개자료를 붙인 보드판 등이 전시돼 있다. 미래청에 입주한 ‘에너지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전시 용도로 쓰던 공간이다. 이 단체는 에너지효율 진단 사업을 통해 에너지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2013년 주식회사(한국에너지복지센터)에서 협동조합으로 탈바꿈한 조직이다. LED 설치 사업도 겸한다.
전시기간은 지난해 12월로 만료됐지만 두달이 넘도록 이 부스는 그대로 방치돼 있다. 서울혁신파크의 총괄운영주체인 서울혁신센터 관계자는 “공모를 통해 새로운 사용자를 찾아야 하는데, 아직 공모절차 진행 전이라 전시물을 그대로 놔뒀다”고 설명했다. 공간 낭비다.
텅 빈 미래청 1층 ‘청년허브’
이곳을 지나던 한 녹번동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혁신파크 안에선 이런 가건물이 수시로 생겼다가 사라지곤 한다. 관리도 제대로 안 한다. 돈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컨테이너 공간에 청년들이 들어가서 일을 하라는 것도 웃긴다. 자기 자식이 창업을 한대도 그렇게 하겠는가.” 그는 서울혁신파크를 ‘녹번동의 흉물’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미래청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1층 중앙로비에 들어서면 뭔가 휑하다. 듬성듬성한 구조물, 뭔가를 더덕더덕 붙였다 뗀 자국들이 선명한 유리문, 해가 바뀐 지 두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는 ‘2017 서울청년주간 변화를 감각하다’라는 슬로건…. 사람의 정성어린 손길이 묻어있지 않은 낯선 풍경이다.
로비 이정표를 따라 1층 ‘청년허브(수탁기관은 연세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면 더 휑하다. 잡다한 부자재들이 널브러져 있고, 유리 칸막이로 둘러싸인 입주 공간은 대부분 텅 비어 있다. 일부엔 먼지까지 쌓여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년허브는 입주가 아닌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되는 공간”이라면서 “비어 있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에 따라 수시로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7년 12월~올 2월 평일 낮에 총 4차례 청년허브를 방문했지만 이 공간은 쓸모 있게 활용되지 않았다. 1시간짜리 행사가 한번 진행된 게 전부다.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사회적경제지원센터’로 이어진다. 공간 곳곳은 닳고 닳은 흔적이 역력하다. 통로 끝에는 나무로 억지로 끼워 맞춘 대형 나무 미닫이문이 한파를 겨우 막고 있다. 이 나무 미닫이문으로 인해 이곳은 ‘미닫이 사무실’로도 불린다. 하지만 독특하다는 느낌보다 그 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몇몇 젊은이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1층과 달리 2~6층은 모두 밀폐공간으로 된 사무실(로비공간 제외)이어서 휑한 느낌이 그나마 덜하다. 하지만 서울시가 서울혁신파크에 유치했다던 ‘혁신가’들의 분주함은 찾기 힘들다. ‘○○센터’로 불리며 서울시와 일종의 협약을 맺고 활동하는 유관기관, 각종 비영리단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작지 않아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래청에 입주한 혁신기업이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들과의 협업을 위해 각종 비영리단체와 지원조직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유가 있다고 해도 활력이 반감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더구나 평일 낮인데도 사무실에 불이 꺼져 있는 비영리단체 입주공간이 부지기수다.
서울혁신파크의 전초기지였던 미래청은 왜 이리 썰렁한 걸까. 한 입주자의 얘기에서 답을 유추할 수 있다. “미래청 입주자들은 약간의 월세를 낸다. 일반 창업자냐, 사회적기업 혹은 협동조합이냐, 서울시 유관기관이냐에 따라 적용되는 할인율이 다르다. 하지만 일부는 아예 월세를 면제받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안다.”

서울시에 수차례 서울혁신파크 입주단체들이 각각 얼마의 사용료를 내고 있는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입주단체별 사용료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조례’에 따라 월 임대료(사용료)를 부과하고 징수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질문의 핵심이었던 개별 입주단체의 사용료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북적대는 50플러스서부캠퍼스
시린 찬바람이 두툼한 옷을 파고든 1월 29일 늦은 오후. 미래청에 입주한 몇몇 청년들이 나무 미닫이문을 밀며 추위를 이겨내던 그 때, 맞은편에 둥지를 튼 50플러스서부캠퍼스에는 웃음과 활기가 넘쳤다.
청년들의 꿈을 키우는 곳이 미래청이라면 50플러스서부캠퍼스는 50~64세 장년층의 사회적 기여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간이다. 미래청과 달리 50플러스서부캠퍼스의 내부는 따뜻했고, 나무 미닫이문 같은 건 없다. 운영구조도 미래청과 다르다. 운영주체나 수탁기관 없이 서울시가 설립한 50플러스재단이 운영한다.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혹시 이런 차이가 미래청과 50플러스서부캠퍼스의 서로 다른 분위기의 원인은 아닐까. 의문이 밀려왔고, 찬바람이 또 들어왔다. 미래청이 추워 보였다. 한파를 온몸으로 이겨내는 청년들이 오버랩됐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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