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와 통상, 기로❶ 승기] 결국 … 간절한 쪽이 진다
[안보와 통상, 기로❶ 승기] 결국 … 간절한 쪽이 진다
  • 김다린 기자
  • 호수 277
  • 승인 2018.02.26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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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통상전쟁 누가 승기 잡을까

문재인 정부의 통상ㆍ외교 전략은 ‘분리책’이다. 통상과 안보는 별개라는 거다. 미국과는 다른 대북정책 기조 때문에 ‘통상전략’을 바꾸지 않겠다는 정공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통상압박이 거세지자 ‘국제무역기구(WTO) 제소’ 카드를 뽑아든 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통상’은 묶는 전략으로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미 통상전쟁의 앞날을 내다봤다.

▲ 무역 제재 카드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으름장이 거세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2016년 11월 9일 오후, 내 휴대전화에 불이 났다. ‘미국 시장 투자 자료를 준비해 달라’는 한국 대기업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트럼프 눈에 들 수 있는 방법’도 물었다. 그의 당선이 예상 밖의 시나리오였음에도 기업들은 민첩하게 플랜B를 가동했다는 증거다. 기업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수手는 뭐든 시도하려 한다. 하지만 그 무렵, 우리나라 정부가 무얼 준비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을 컨설팅하는 한 투자 전문가의 설명이다. 경제의 절반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외부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런 냉엄한 방정식을 되새기게 하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 경제 때리기’는 기세등등하다. 유세 기간 내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수차례 으름장을 놓던 그는 허언虛言 같던 공언公言을 차근차근 현실로 옮기고 있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내놓은 데 이어 “공정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한국산 수입 철강 등을 강하게 규제하겠다는 안案도 발표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은 무역에서 동맹이 아니다”는 강경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이 미국에 손해를 입히고 있다’는 게 표면적인 제재 근거다.

수세에 몰린 우리 정부는 즉각 반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 19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용도, 톤도 결연했다. “철강, 전자, 태양광, 세탁기 등 우리 수출 품목들은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미국의 수입 규제로 수출 전선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고,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

시장은 이 발언을 흥미롭게 조명했다. 기존 정부 반응과는 온도차가 극명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강대국을 상대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애매한 태도를 견지했다. 대중對中 무역에 큰 타격을 입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이슈를 두고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이때 우리 입을 틀어막은 논리는 ‘한ㆍ미 안보동맹 강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안보와 통상을 의도적으로 떼놓고 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북ㆍ미 대화 가능성 등 안보 문제와는 별도로 불합리한 미국의 무역 조치에는 고강도 대응에 나서겠다”는 투트랙 전략이다.

“안보 따로 통상 따로”

일견 타당한 논리다. 미국의 제재 조치는 국제 무역 규범에 어긋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WTO에 제소하면 승리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각종 통계도 미국이 빼든 칼을 머쓱하게 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015년 258억 달러, 2016년 232억 달러, 2017년 179억 달러 등으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밝힌 미국의 대한 무역수지 적자폭은 2015년 283억 달러에서 2017년 229억 달러로 크게 감소했다. 이런 통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트럼프가 한국을 향해 빼든 칼을 거두는 게 맞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기세가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의 한국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기도 했다. 어떻게든 한미 통상 갈등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처럼 들린다.

왜일까.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유승경 부소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안보와 통상은 분리돼 있다. 하지만 국익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에선 둘을 연결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최종 목적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다. 그래서 통상정책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쪽이 원칙을 지켜도 협상 테이블 앉은 상대방이 무시하면 전략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안보 따로 통상 따로’가 공허한 외교적 수사修辭로 들리는 이유다.

사실 ‘안보-통상 분리책’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2013년 2월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반덤핑ㆍ상계관세를 부과하자 우리 정부는 WTO에 제소해 승리를 거뒀다. 우리 정부가 ‘안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우리 정부의 대응에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오바마 역시 ‘안보-통상 분리관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와 같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는 되레 ‘안보-통상’을 묶으려 애쓰고 있다. 미국 주요 동맹국 중 유일하게 한국이 이번 통상압박의 타깃이 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북핵문제ㆍ남북대화 등을 둘러싼 한미 외교안보 갈등이 트럼프의 통상압박을 부추겼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저서 「불구가 된 미국」에서 밝힌 협상의 기본 전략은 이렇다. “합의가 간절한 쪽이 더 적게 얻는다.” 그는 한국이 통상도, 안보도 간절하다는 걸 안다. 우리나라는 뭐든 더 적게 얻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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