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후광 잃은 쿡 애플답지 않은 CEO
잡스 후광 잃은 쿡 애플답지 않은 CEO
  • 정다운 기자
  • 호수 5
  • 승인 2012.08.08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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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애플, 쿡의 애플

▲ 카리스마와 독선, 직감으로 똘똘 뭉친 잡스와 달리 쿡은 예의바르고 부드러운 스타일이다. ‘잡스의 애플’과‘쿡의 애플’달라도 많이 다르다.
잡스가 있는 애플과 잡스가 없는 애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의 사망을 기준으로 2011년과 2012년의 회계연도 3분기 실적을 대조해봤다. 2011년 회계연도 3분기(4~6월) 애플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19일(현지시간) 발표된 보도에 따르면 순이익은 73억1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5% 늘어났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무려 82% 늘어난 285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1년도 3분기는 CEO인 스티브 잡스가 1월부터 병가를 내 팀 쿡 대행 체제로 운영되던 기간이다. 제품은 날개가 돋친 듯 팔려나갔다. 아이폰은 2030만대, 아이패드는 925만대나 판매됐다. 잡스의 후계자 ‘팀 쿡’의 자질논란도 9분기 연속 이어진 실적 호조 행진에 자연스럽게 묻혔다.

검증대 오른 잡스 후계자

하지만 이런 실적은 팀 쿡의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다. 잡스는 자리를 비웠던 6개월 동안에도 뒤에서 철저하게 애플을 경영하고 있었다.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2011년 8월 1일 잡스는 미 실리콘밸리 일간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율을 느낄 정도로 훌륭한 분기 실적”이라며 “가을에 나올 iOS5와 아이클라우드에 전력 투구할 것”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잡스라는 거대한 후광이 없는 팀 쿡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올해 3분기 실적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은 “애플이 멈춰섰다” “스마트폰 시장 둔화의 전조다”며 애플의 실적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7월 24일(현지시간) 발표된 보도에 따르면 매출은 350억2300만 달러, 순이익은 88억2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는 19~23% 상승한 수치지만 시장의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실적 발표와 동시에 주가는 5.8% 급락했다.

충격적인 실적 부진의 이유는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이폰 판매 급감이었다. 올 1~3월에 비해 26%나 줄어든 2600만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아이폰5 출시 소식이 일찍 알려진 게 패인이었다. 아이폰4S를 구매하지 않고 기다리는 대기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삼성전자 갤럭시S3의 선전도 애플 부진의 또 다른 이유였다. 팀 쿡은 뼈아픈 패배감을 온 몸으로 맛봐야 했다.

팀 쿡은 미국 앨라배마 출신으로 어번대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듀크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독한 일벌레고 운동광이다. 12년간 IBM에서 근무한 뒤 컴팩 컴퓨터사에서 일하던 중 1998년 애플에 합류했다.

 
잡스는 팀 쿡을 단 5분 동안 면접을 봤다. 그리곤 수석 부사장 자리에 그를 앉혔다. 잡스는 직원을 까다롭게 채용하기로 악명이 높다. 고급인력을 스카우트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멍청이’라고 부르며 가차 없이 내보내던 잡스에게 이례적인 일이었다. 잡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팀 쿡은 2007년 최고운영자(COO) 자리에 오르기까지 경영관리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재고 관리와 부품 조달 부문에서는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쿡은 특히 재고가 쌓이는 것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로 질색했다. 재고 철학도 확고했다. 그는 “우유는 유효기간이 지나면 치즈라도 만들 수 있지만 한주에 2%씩 가치가 떨어지는 전자제품 재고는 쓰레기나 다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100여개에 달하던 부품 공급업체 수를 20개로 줄였다. 전 세계에 산발적으로 퍼져있던 조달 네트워크도 아일랜드와 중국, 싱가포르 등 3개 주요 거점으로 몰아 재구축했다. 물류비용 최소화를 위한 조치였다. 공장들은 폐쇄됐고 대신 하도급 계약건이 줄을 이었다.

눈 깜짝 할 사이 재정비가 이뤄졌고 팀 쿡이 추진한 구매 프로세스 혁신은 2000년대 애플의 질주에 힘을 보탰다. 아이폰•아이패드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팀 쿡은 미래예측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는 D램 사용이 일반적이던 시기에 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을 내다봤다. 가격이 오르기 전 선불결제를 통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 등에서 12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낸드 플래시를 구매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애플사는 2010년까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플래시 메모리를 저렴한 가격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잡스는 그에게 더욱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시장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포브스는 “쿡이 사임해 잡스를 버리고 경쟁사로 갔다면 잡스의 사임 때보다 주가가 더 큰 폭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2010년 9월 쿡이 휴렛팩커드의 CEO로 영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자 애플 주가는 6% 가까이 하락했다.

팀 쿡은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크리스마스와 새해에도 공장에서 일한다. 광적으로 일을 몰아붙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운영팀 회의 중 발생한 일화는 흥미롭다.

팀 쿡은 당시 “아시아 지역 유통 상황이 좋지 않아서 누군가 중국에 가서 일을 처리해야겠다”며 운영팀 이사였던 사비 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회의는 계속 진행됐고 30분 뒤 쿡은 갑자기 칸에게 “아직도 여기 앉아 있느냐”고 쏘아붙였다. 칸은 회의 도중 벌떡 일어나 옷도 챙기지 못한 채 비행기를 타고 중국 출장을 떠나야 했다.

애플의 임원인 마이클 제인스는 2011년 1월 뉴욕타임스에 팀 쿡과의 스토리를 소개했다. 제인스는 “출장을 위해 18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쿡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팀이 회계서류를 검토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 6시에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 곧바로 관계자들과 미팅을 가졌는데, 그 회의가 12시간이 넘게 진행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현지 직원들은 하나 둘 나가떨어졌다. 팀 쿡은 괘념치 않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슬라이드를 넘겼다.

제인스는 “팀 쿡은 마라톤 회의를 즐긴다”며 “직원들이 회의 시간 내내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학생들처럼 시계만 쳐다봤지만 그는 평소 즐겨먹는 에너지바의 포장을 뜯으며 ‘좋아 그 다음 페이지’라고 외쳐댔다”고 말했다. 그는 “팀 쿡은 회의가 아무리 길어져도 지치지 않는다”며 “잡스와 쿡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일 중독’일 것이다”고 말했다.

잡스가 극찬한 쿡, 그는 실력자인가

 
그렇다고 잡스와 팀 쿡이 비슷한 성격이라는 건 아니다. 카리스마와 독선, 직감으로 똘똘 뭉친 잡스와 달리 쿡은 예의바르고 부드러운 스타일이다. 특유의 남부 사투리로 항상 공손하게 이야기해 ‘남부 신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또 팀 쿡을 인터뷰한 기자들은 쿡을 "쿨하고 침착하며 절대로 감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양보가 없고 무서울 정도로 꼼꼼한 인물이다. 미 포춘은 “회의만 시작하면 팀 쿡이 돌변하지만 이로 인해 직원들이 그를 싫어하거나 피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잡스는 평소 “내 머리에는 필터가 없어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이라며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던 스타일이었다. 반면 팀 쿡은 직원들에게 격려의 이메일을 보내며 “우리는 한 팀”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인다. 잡스가 공상적•즉흥적•통합적•주관 적 사고로 무장된 우뇌형이라면 쿡은 합리적•분석적•객관적 사고를 하는 좌뇌형이다.

 
둘은 달랐지만 서로를 보완하며 최고의 호흡을 자랑했다. 최고경영자인 잡스가 제품과 마케팅에 창의성을 불어넣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하는 동안 엔지니어 출신인 쿡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상업화했다.

안타깝게도 팀 쿡은 혼자다. 복식 선수가 ‘스타 플레이어 파트너’를 잃고 단식으로 코트 위에 선 형국이다.
올 5월 24일 CNN MONEY는 “팀 쿡이 CEO로 부임한 기간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를 강화하고 아이패드의 해상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등 기존 제품의 하드웨어적 보강에 힘썼지만 잡스라면 내놓았을 킬링 제품 출시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보도했다.

쿡은 ‘잡스가 카리스마로 일궈왔던 애플만의 혁신성을 퇴색시킬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에 직면했다. 장기적으로는 쿡이 애플에 자신의 색을 입혀가는 마스터플랜을 짰다 할지라도 애플 안팎으론 나쁜 변화의 기운이 흐른다. 실제 쿡의 행보가 일반 IT기업의 보통 경영자와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신경이라도 쓴 듯 그는 IT 전문매체 올씽스디와의 인터뷰에서 “잡스의 창의적 능력을 존중하지만 단순히 업적을 지켜보는 수준에는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박물관을 좋아하지만 거기에 머무르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애플사가 변화 없이 정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팀 쿡 자신도 애플이 자신의 색깔을 닮아가고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경영 효율화에 집착하는 쿡의 모습이 애플에 녹아들면서 잡스 때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서다.

포춘의 선임기자인 라신스키는 올 6월 11일 포춘 인터넷판에 팀 쿡 취임 이후 애플에 일어난 변화를 상세히 소개했다. 라신스키는 ‘애플 인사이드-비밀제국 애플 내부를 파헤치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라신스키 기자는 “쿡 취임 후 애플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경영상의 최우선 순위가 ‘경영 효율화’로 바뀐 것을 꼽을 수 있다”며 “이런 기조 변화는 제품 개발 과정의 핵심 부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 기업 닮아가는 애플

지난해 말까지 애플에서 14년간 엔지니어로 일해 온 맥스 팔리 전 부사장은 “애플의 발전 동력이 기존에는 혁신을 추구하는 엔지니어링이었다면 지금은 일반 회사와 다를 바 없는 보수적 경영으로 대체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회의에 제품 담당과 글로벌 부품 담당 직원들이 모두 참석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내가 근무할 때는 엔지니어들이 원하는 것을 결정하면 그것을 구해주는 게 제품•부품 담당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들의 볼멘소리도 높다. 현재 애플에 근무 중인 엔지니어는 “잡스 체제에서는 창의적인 작업에 몰입한 엔지니어를 방해하는 건 금기시됐었는데 요즘에는 보통 회사들이 하는 고민거리를 공유하느라 업무에 방해를 받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것은 매우 애플답지 않은 일(un-Apple-like)”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미 실리콘 밸리에 벤처기업을 차린 전직 애플 직원이 현직 애플의 엔지니어와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황급히 회사로 돌아가는 모습을 예상했지만 현직 애플 엔지니어는 “네가 괜찮으면 커피 마시고 들어갈 시간이 있어”라고 했다.

전직 애플 직원은 “애플 직원들이 팔자 좋아졌다(I think people are breathing now)”고 말했다. CEO 팀 쿡에게 칭찬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다운 기자 justonegoal@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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