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 온기는 천천히 퍼진다”
“아랫목 온기는 천천히 퍼진다”
  • 강서구 기자
  • 호수 241
  • 승인 2017.06.01 08: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득주도 성장론과 인내의 경제학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론을 꺼내들었다.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는 것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찍힌 낙수효과가 아닌 분수효과를 노리겠다는 건데,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기대와 한계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 문재인 정부가 경기 활성화 정책으로 소득주도 성장론을 꺼내 들었다.[사진=뉴시스]

한국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긍정적 시그널이 잡히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9%로 지난해 4분기 0.5% 대비 0.4%포인트 상승했다. 글로벌 경기가 회복하면서 수출이 늘어난 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수출 회복세가 ‘내수 아랫목’까진 덥히지 못하고 있다.

소매판매액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2015년 4분기 이후 5분기 연속 둔화다. 소득양극화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분위 가구(하위 20%)의 월평균 실질 소득은 144만7000원으로 전년(153만2000원) 대비 5.6% 감소했다. 하지만 5분위 가구(상위 20%)는 같은 기간 2.1% 증가한 834만8000원을 기록했다.

이런 결과는 보수적 경제정책인 ‘낙수효과’의 실패를 뜻한다. 국제통화기금(IMFㆍ2015년)이 전세계 150여개국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1%포인트 증가하면 이후 5년 성장이 연평균 0.08%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하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증가한 경우엔 이후 5년 성장이 연평균 0.38%포인트 증가했다. 보수적 시장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소득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소득주도 성장론이 부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임금주도 성장’을 주장한 포스트 케인지언(Post-Keynesian) 학파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수요가 경제성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임금 수준을 높여 수요를 늘리면 ‘소비 증가→ 기업 생산 증가 → 고용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도 ‘소득주도 성장론’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에 장하성 고려대(경영학) 교수를 앉히고, 공정거래위원회장에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를 임명한 이유도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다. 

문제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꼬집는 경제 전문가들은 ‘어떻게 성장 없이 임금을 올릴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조동근 명지대(경제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임금은 성장이 수단이 아닌 결과물이다. 성장을 해야 임금을 올려줄 수 있다. 임금은 금리처럼 조절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아니다. 임금을 경기조절 수단으로 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낙수효과의 처참한 실패

임금 인상을 위해선 기업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할 땐 특히 그렇다. 대기업이야 여유가 있겠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체엔 불합리한 고통을 줄 여지도 있다. 임금을 올린 후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체를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나눠줄 수 있지만 이럴 경우엔 ‘재정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재정을 확보하는 게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김영훈 바른시민회의 실장은 “소득주의 성장론을 구현하기 위해선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정부 곳간은 텅 비어있고,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증세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임금을 인상한다고 곧바로 소비가 활성화하는 것도 아니다. 가계부채가 많은 취약계층의 경우, 소득이 늘면 부채(원리금)를 갚는데 더 많은 돈을 쓸 가능성이 높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가 소득주의 성장론을 막아설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부채규모는 1359조6538억원을 기록했다. 가계부채 증가율은 11.1%로 지난해 4분기(11.7%) 대비 하락했지만 여전히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자영업자 대출 규모가 670조원으로 증가하는 등 생계형 대출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물론 반론도 나온다. 송종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자문위원(경제학 박사)의 주장을 들어보자. “소득주도 성장론의 요지는 기업이 ‘성장의 과실’을 대부분 가져가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가치관을 공유한다면 소득주의 성장론은 결코 허울뿐인 논쟁거리가 아니다.”

‘소득 증가분이 소비로 이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비판에도 그는 반론을 폈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임금 인상과 함께 노동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소득주의 성장론의 한축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살펴보면 답이 쉽게 나온다. 예컨대,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이자율이 감소해 임금이 인상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비정규직이 불안에 떠는 건 소득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이라도 제거할 수 있다면 소득이 안정되고, 소비는 늘어날 것이다.” 아랫목의 온기가 넓게 퍼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소득주의 성장이 필요한 이유

숱한 논란에도 소득주도 성장론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양극화가 워낙 심하기 때문이다. 기존 경제정책으론 사회의 부조리를 바꾸지 못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한국경제를 되살리는 마지막 처방전일지 모른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건 실체적 합리성이 아닌 절차적 합리성이라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김영한 성균관대(경제학) 교수는 “낙수효과를 통한 경기 부양정책이 실패한 지금 소득주도 성장이 갖는 의미는 크다”라면서도 “소득주도 성장이 소득의 재분에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정책의 수행 과정에 절차적 합리성이 지켜져야 한다”며 “무엇보다 재벌 잡기 식의 정책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775 에이스하이테크시티 1동 12층 1202호
  • 대표전화 : 02-2285-6101
  • 팩스 : 02-2285-6102
  • 법인명 : 주식회사 더스쿠프
  • 제호 : 더스쿠프
  • 장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2110 / 서울 다 10587
  • 등록일 : 2012-05-09 / 2012-05-08
  • 발행일 : 2012-07-06
  • 발행인·대표이사 : 이남석
  • 편집인 : 양재찬
  • 편집장 : 이윤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중
  • Copyright © 2025 더스쿠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hescoop.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