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전락한 세빛섬

해가 가볍게 내리쬐는 봄날. 서울 잠수교 위를 달리던 버스에서 내렸다. 문 밖으로 한발 내딛자 선선한 강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에 부닥친다. 한강의 수변공원을 거닐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 2대의 버스만이 정차하는 이 정류장에서 200m가량을 걸어 나가면 한강 위로 우뚝 솟아오른 두 개의 인공섬이 눈에 들어온다. 채빛섬과 가빛섬. 세빛섬을 이루는 네개의 섬 중 규모가 가장 큰 두개의 섬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나머지 두 섬, 예빛섬과 솔빛섬도 모습을 드러낸다.
4월 24일 12시 20분께, 바깥에서 본 세빛섬의 전경은 ‘한강 르네상스’를 이끌 관광명소라는 명성이 무색했다. 점심시간을 틈타 여유를 찾는 4~5명의 직장인, 자전거를 세워놓고 난간에 기대 잠시 바람을 쐬고 있는 청년 2~3명. 강의가 없는 시간에 맞춰 놀러 나온 듯한 10여명의 대학생, 이들이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강바람이 점차 거세지니 황량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평일 점심 세빛섬의 풍경이다. 평일이라서였을까. 하루 평균 방문객 평일 4500명, 주말 1만명. ‘어벤져스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던 2015년이 세빛섬의 마지막 봄이었던 걸까. 2006년 서울시가 야심차게 기획한 한강 르네상스의 핵심사업 세빛섬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빛섬은 2014년 10월 정식 개장 이후 내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적자 규모는 2014년 73억원, 2015년 30억원, 2016년 32억원으로 첫해보단 손실이 줄었지만 여전히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광객 없는 한강 관광명소
세빛섬의 운영 악화로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효성이다. 효성은 세빛섬의 지분을 57.8%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그래서인지 세빛섬 매출의 99%도 효성에서 나온다. 세빛섬의 경영이 악화할수록 효성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게 효성 측의 반응이다. 효성 관계자는 “세빛섬은 수익사업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공익사업”이라면서 “적자가 나더라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익을 내고자 해도 서울시 산하의 한강사업본부가 가격과 이벤트 등을 통제하고 있어 사실상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강사업본부가 제약을 하고 있다는 말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세빛섬 관계자는 “공차와 같은 프랜차이즈의 경우 다른 지점보다 비싸게 받지 말라는 정도의 ‘권고사항’만 있을 뿐 별다른 제약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전시장ㆍ공연장으로 쓰이던 예빛섬과 솔빛섬은 현재 방치돼있어 “레스토랑, 펍, 카페만 즐비한데 무슨 공익사업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 효성이 세빛섬 사업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건 공익사업이라서가 아니다. 생각지 못하게 불어난 투자금 탓에 셈법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효성이 세빛섬 사업에 참여한 시기는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 때다. 세빛섬의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개장을 눈앞에 두고 있던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으로 교체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600억원 불어난 투자금에 발목

세빛섬 임대사업이라도 잘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다.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 뷔페 두곳을 제외하면 임대 실적이 신통치 않다. 효성 관계자는 “세빛섬의 손익분기점은 100억원 이상의 임대료를 받아야 맞출 수 있다”면서 “하지만 교통 및 지리적 위치 등 열악한 입지조건 탓에 임대사업이 여의치 않다”고 털어놨다.
앞으로도 문제다. 효성은 서울시와 20년 무상운영, 10년 유상운영 후 기부채납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지금은 무상운영 기간이라 추가금이 없지만 이후 유상운영하게 되면 사용료까지 지불해야 한다. 정책변경 탓이든 셈의 오류 탓이든 세빛섬은 미래가 어두운 섬으로 전락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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