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38세 때의 일이다. 지금과 달리 그의 겉모습은 예스럽다. 조금은 촌스런 8대 2 가르마를 하고 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그는 다른 참석자와 달리 차렷 자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의 언변은 유연하고, 논리는 명확했다. 특유의 ‘메타포(은유)’를 섞어가며 벤처기업의 난맥상을 쉽게 설명했다. 정부정책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자! 지금부터 2000년 「안철수의 생각」을 들어보자. 박병엽 부회장, 이금룡 코글로닷컴 회장의 당시 생각도 팁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좌담회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더 스쿠프’가 독점 발굴했다.
전여옥(이하 사회) : 벤처에게 과연 수익모델이 있는가, 정부의 벤처사업 육성 정책이 없어진 것 아닌가 할 정도로 벤처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그만큼 벤처 환경이 열악해졌다. 벤처 붐 1년여 만에 이렇게 추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벤처 위기는 전적으로 벤처 기업인 책임”
이금룡 : 우리나라 사람보고 벤처는 실패한다고 얘기했다면 벤처 붐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벤처가 대박이라고 하니까 붐이 일어난 거다. 이젠 벤처를 투기의 단계에서 투자의 단계로 봐야 한다. 투기의 부작용을 걷어내고 투자의 순기능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무조건 벤처에 투자하면 된다는 식’은 투기다. 그렇다고 좋은 벤처에마저 투자 안 하겠다면 벤처산업에게 죽으라는 말밖에 안 된다.
박병엽 : 벤처기업의 초기 행태를 벤처사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제조업을 하든 IT사업을 하든 벤처 비즈니스 성격이 강하다. 현재 벤처 기업인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을 너무 쉽게 보고 접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근본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기 위한 내부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 벤처 기업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정치권과 벤처의 유착설 등 벤처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에는 문제가 있지 않았나. 즉, 벤처가 이렇게 된 데는 정부의 책임이 없는가.
이전무는 기본적으로 벤처 기업가들이 가장 큰 잘못을 했으며, 정부에게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금룡 사장은 여기에 동의하는가.
이금룡 : 정부가 미숙했다고 본다. 잘못했다기보다 미숙했던 것이다. 사실 코스닥과 나스닥은 뒤의 ‘닥’자만 똑같지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벤처라고 하는 것은 스타트 업 컴퍼니(sta rt up company)다. 스타트 업 컴퍼니라는 것은 이전무 지적대로 차입경영에서 펀딩경영 쪽으로 금융의 인프라가 이어져야 한다. 펀딩경영을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엔젤투자를 받는 것이고, 둘째는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는 것이다. 셋째는 코스닥을 통해 직접 금융권에서 조달하는 경우다.

안철수 : 정부가 대여에서 투자로 정책을 전환한 것은 적절했다. 그런데 정부가 빠질 시기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산중턱에 굉장히 좋은 공터가 있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산중턱까지 도로를 닦고 그곳 평지를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다.
사실 정부가 벤처 붐을 조성해서 투자로 적극 돌아선 것은 굉장히 잘한 정책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직접 투자에서 빠져야 한다. 오히려 인터넷 인프라 등 간접적인 인프라 구축과 벤처기업을 위한 아웃소싱 업체들을 활성화시키는 일이 바람직하다.
코스닥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대학입시와 같다. 들어가기는 어려운데 들어간 다음에는 아무렇게나 해도 퇴출이 안되는 그런 방식은 고쳐야 한다.
사회 : 퇴출 기준이 없다는 건 문제 아닌가.
이금룡 : 퇴출, 우리도 여러 번 건의를 해보는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확한 기준 설정이 어려운 것이다. ‘한국 사람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했다. 미국은 나스닥에서 주가가 1달러 이하로 한 달만 계속되면 퇴출되니까 1.5달러만 되면 전 경영진이 대책 마련에 정신이 없다. 우리는 지난해 주가의 10분의 1이 되든 20분의 1이 되든 경영자는 책임이 없다.
사회 : 어쨌든 기업가가 선이윤를 내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는 모두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다.
신도시 만들어 놓고 도로 안 닦은 것처럼 정부의 벤처정책에도 문제점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대안 또는 탈출구는 무엇인가.
박병엽 : 기업을 이끌어 가는 대주주나 경영 책임자들은 업보가 있다. 그런데 기업하는 사람들이 대주주의 업보, 경영책임자의 업보를생각 안하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투자자 입장에서 긍극적으로 투자의 책임은 자신이 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할 일은 투자자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투자 판단이 적기에 이루어지는 대신 투자의 책임 또한 궁극적으로 투자자가 져야 한다. 무엇보다 기초 인프라의 문제다. 코스닥시장에서 보면 ‘그랬다더라’, ‘대박이 터졌다더라’라는 얘기가 항상 돌 수 있지만, 정부는 인위적인 시장의 조정보다 공정한 투자 게임 룰이 형성될 수 있도록 관리자, 즉 저스티서로서의 역할을 시스템적으로 해야 한다.
이금룡 : 지식경제 포럼에 참가한 네샤임 교수는 ‘미국의 벤처 캐피털리스트는 절대로 기술에 투자하지 않고 기업에 투자한다’고 했다. 기술은 얼마든지 사올 수 있지만 기업은 금방 사올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매니지먼트, 인력, 문화, CEO 능력이 90%고 기술은 10%라는 것이다.
“비즈니스는 혁명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네샤임 교수가 지적한 또 하나는 기술에 바탕을 둔 파운더가 계속해서 CEO로 남아 있을 것인가, CTO로 남을 것인가 등을 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년 3개월이라고 했다. 창업한 지 3년 3개월이 지나면 스티브 케이스나 제프 베조스나 이런 사람들처럼 ‘그래, 나는 경영능력 검증받았으니 난 계속 갈게’ 하든지 아니면 야후의 제리양처럼 ‘난 그냥 CTO가 될게’라는 것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금룡 : 벤처정신의 기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마케팅으로 어떠한 비전을 갖고 끝까지 그 비전을 달성하느냐의 문제다. 펀딩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돈을 벌기 위한 머니게임이 되어서는 안된다.
“변화가 이윤 창조하는 수익모델이다”
사회 : 해외진출을 통한 펀딩과 글로벌 전략은 무엇인가. 그리고 수익모델의 방안은.
이금룡 : 해외진출의 관건은 마케팅이다. 우리나라 벤처는 테크놀로지 기반으로 되어 있어 마케팅력이 부족하다. 여기에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그 나라의 실정에 맞도록 해야 한다.
수익모델은 정말 간단하다. 1/4분기부터 이익이 나기 시작한 옥션의 경우 하루 회원가입수가 2만5천명이다. 현재 가입 회원수는 2백30만명, 올해 안으로 700만명을 돌파할 것이다.
그런데 신문과 TV를 통해 열심히 광고할 때는 하루 5000명 정도만 가입했다. 그런데 레떼컴이나 X2게임, 조인스닷컴 등의 네트워크를 통하니까 하루 2만5000명이 가입하고 있다. 여기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를 통해서 원가절감은 물론 이익까지 증대시키는 것이다.
안철수 : 국내에서 기반도 안 잡고 무조건 해외로 나가려고 시도하는 업체들이 많다.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해외는 기술 싸움이라기보다 마케팅 싸움이다. 그리고 자본력이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의 충분한 검증과 자본 축적의 마케팅 노하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으로 진출하는 것은 백전백패(百戰百敗)다.
수익모델의 마케팅에 대해서도 너무 패배의식에 젖어 있다. 난 소질이 없어 남들 하는 만큼만 따라하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통해 마케팅쪽 접근을 시도했는데 생각보다 성과가 좋았다. 고백하자면, 그동안 마케팅 이론은 한국에 안 맞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왔다.
박병엽 : 해외진출 전략으론 조인트, 단순 세일즈, 기술의 세계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세일즈와 전략적 제휴를 할 때도 기업들은 구체적인 전략도 없이 경험에 따라 무조건 밀고나간다. 설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략에 따른 방안들을 가지고 세일즈를 하든 제휴를 하든 해야 한다.
내 전략은 철저한 ‘2등화 전략’이다. 2등화 전략은 협력을 이끌어내는 기업의 보완적 역할로서, 덩치 큰 기업에 들어가 세력을 키우고 많은 것을 얻어내는 전략이다. 수익모델은 긍극적으로 선택과 집중의 문제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업전환의 문제다. 영원한 기술도 없고 영원한 이익을 보장해주는 마케팅도 있을 수 없다. 변화가 이윤을 창조하는 수익모델이다.
사회 : 예측이 가능할 때 그 경제가 튼튼하다. 올 1년 벤처산업의 전망을 예측한다면.
안철수 : 힘들겠지만 점진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단기적 시각으로 너무 앞만 보며 달려왔다. 큰 고통도 겪은 만큼 좀더 성숙해질 것이다. 지난 해를 단지 재수가 없다는 식으로 접근 안했으면 한다. 많은 비용을 지불했지만 수업료로 생각하고, 경험을 발판 삼아 단계적으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정부 정책도 제도를 개편하고, 장기적으론 교육분야로 집중해서 차기정권에도 이어질 수 있는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
이금룡 : 기본적으로 밝다. 벤처나 IT 비즈니스는 기술의 성공•실패에 따라 발전하는 모델이 아니라 학습효과를 통해 발전하는 모델이다. 일시적인 부작용이 있어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갈수록 추스려지면서 학습의 효과가 나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전망은 밝다고 본다.
박병엽 : 일상으로 생각한다. 일상의 어려움 중의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서 좋은 시절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내재성, 즉 내성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사회 : 마지막으로 내실 있는 벤처를 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항을 하나 꼽는다면 .
박병엽 : 모럴이라고 생각한다. 컨센서스가 있는 모럴이 있어야 한다. 이게 벤처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그리고 철저한 글로벌 전략으로 해외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신의 강점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다.
이금룡 : 앞으로 기술과 마케팅의 균형 잡힌 감각으로 지속적인 학습효과를 가져온다면 우리 벤처기업에겐 충분한 승산이 있다.
정리=이윤찬 기자 chan4877@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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