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R의 냉정한 두얼굴
인구 증가 정체와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하면서 침체기에 머물러 있던 식품업계에 HMR이 한줄기 빛으로 등장했다. 식품업계는 HM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장을 증설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HMR의 성장은 마냥 반길 일이 아니다. 그 이면에 ‘양극화’가 꿈틀대고 있어서다.

6개월이 넘는 유통기한과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점 등 유해성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햇반을 중심으로 한 즉석밥 시장은 2011년 이후 급성장했다. 직접 밥을 해먹지 않고, 간편함을 추구하는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다. 2002년 278억원이던 즉석밥 시장 규모는 올해 2400억원으로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최근 HMR 제품은 ‘집밥 같은’ ‘엄마 손맛’을 표방하며 가정용 반찬, 국ㆍ찌개류, 죽류까지 다변화하고 있다. HMR 시장이 연평균 30% 이상 고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CJ제일제당, 대상, 풀무원, 오뚜기 등 대형식품업체뿐만 아니라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유통업체, 외식업체(본아이에프ㆍ강강술래ㆍ놀부 등), 식자재업체(신세계푸드ㆍ현대그린푸드ㆍ롯데푸드 등) 까지 뛰어들었다.

HMR이 식품업계 블루칩으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1인 가구의 증가다. 실제로 HMR의 주소비층인 1인 가구는 520만 가구(전체의 27.7%ㆍ2015년 기준)로 매년 증가세다. 조상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HMR 시장은 2000년대 초반 형성됐지만 국과 탕을 좋아하는 한국의 고유 식문화, 가공기술 부족, HMR 제품에 거부감 등의 이유로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1인 가구의 급증에 힘입어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HMR 시장 성장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넉넉지 않은 경제 상황 탓에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1인 가구가 늘면서 HMR의 성장세가 가팔라졌기 때문이다. 밥을 해먹자니 재료비가 부담이고, 사먹기도 만만지 않은 1인 가구가 HMR을 집어든 결과라는 거다.
1인 가구 성장과 HMR
2015년 한국농촌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HMR을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리해 먹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34.6%)’이었고, 구입 시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은 ‘맛(29%)’ ‘가격(29%)’이었다. 요즘 식문화 트렌드인 웰빙이나 영양을 고려했다는 응답률은 미미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SNS 공간에서 ‘왜 HMR을 먹는가’ 등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그냥’ ‘먹을 만하다’ ‘예상외로 맛있다’ 등의 답변이 주를 이뤘다. HMR이 먹는 즐거움을 주기보단 한끼 떼우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다.

일주일에 서너번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는 김상원(28)씨는 “저렴한 식사대용품으로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데, 이마저 가격이 오르면 먹고살기 정말 힘들거다”고 말했다. 이러다간 HMR이 양극화의 지표로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비싼 HMR을 손도 대지 못하는 서민층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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