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모래성에 깃발을 꽂으리오
누가 모래성에 깃발을 꽂으리오
  • 김다린 기자
  • 호수 220
  • 승인 2016.12.26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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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경제다

올해 많은 기업들이 기업공개(IPO)를 원했다. 주식을 살 투자자를 공식적으로 모집하는 자리인 만큼, 많은 투자자가 기업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안타깝게도 이 바람은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기업의 성장을 점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경제가 암울하기 때문이다. 모래성에 깃발을 꽂을 투자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 공모시장이 한파를 맞았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 2000년, 한국 주식시장은 뜨겁게 타올랐다. 불과 3년 전 외환위기가 시작된 국가의 증시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시장에 불을 붙인 건 ‘벤처 바람’. 정부가 코스닥 시장과 중소기업 위조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쏟아내면서다. 인터넷 기술의 엄청난 발전도 한몫했다. 당시 ‘무료 인터넷전화’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새롬기술은 반년 만에 주가가 150배가 뛰었다.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업공개(IPO) 붐이기도 했다. 2000년 코스닥 시장에서만 2조5507억원의 IPO 공모 자금이 몰렸다.

# 2008년 세계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사상 유례없는 불황이 터졌기 때문이다. 리먼브라더스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미국 은행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글로벌 경제는 끝없이 추락했다. 기업 실적은 떨어졌고 주식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국내 증시는 1030선이 붕괴되면서 ‘세자릿 수’ 공포에 빠지기도 했다. 이때 코스피 시장의 IPO 총 공모금액은 8069억원에 불과했다.

두 사건이 가르치는 명제는 하나다. ‘IPO 시장은 경기 흐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기가 좋을 때 주식시장은 기업 이윤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당연히 기업 투자 심리가 올라가고 주식 평가도 개선된다. 이런 상황에서 IPO를 하려는 기업은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팔 수 있게 된다.

또한 경기가 호황기에 접어들 때는 많은 기업이 투자 기회가 늘어나 자금을 조달할 필요성이 커진다. 그래서 IPO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기가 나쁘면 반대로 흘러간다. 주식시장의 투자 심리가 위축될 뿐만 아니라 기업도 투자할 기회가 줄어들어 IPO시장은 위축된다.

▲ 전문가들은 경제가 살아나야 IPO 시장도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사진=뉴시스]
올해는 풍년이라더니…

전문가들은 올해 ‘IPO 풍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어급 기업들이 줄줄이 증시 입성을 앞두고 있는데다 중견 기업들의 IPO 의지 역시 강했기 때문이다. 시장 활황을 틈타 외국기업의 역상장 역시 활발할 것으로 판단했다. 덕분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투자자들은 공모주 청약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공모주 물량을 확보한 공모 펀드에는 금세 자금이 몰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전망은 빗나갔다. 뚜껑을 열어보니 풍년은커녕 쪽박을 찼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쪽박을 찼다는 거다. 그만큼 지금의 한국 경제는 잿빛이다. 무엇보다 증시가 살아나기 위한 전제인 기업 실적이 신통치 않다. 올해 3분기 국내 상장사들의 매출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유가증권시장 연결재무제표 제출 대상 결산법인 511개사의 누적 매출액은 1186조274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192조1540억원)에 비해 0.49% 줄었다. 83개사(16.24%)는 적자를 기록했다.

당장의 실적만이 문제가 아니다. 미래도 불투명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2.4%로 점쳤다. 정부(3.0%)와 한국은행(2.8%)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ㆍ2.6%)보다 비관적인 전망이다. KDI는 “대내외 위험요인이 커지는데 우리 경제의 위기대응 능력은 줄어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형 정치 이슈(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도 발목을 잡고 있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정지를 거론한 뒤 “우리는 이미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올해 2.7%, 내년 2.5%로 전망했다”면서 “이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의 전망대로라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15년과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3년째 2%대에 머물게 된다. 경제성장률이 3년 연속 3%를 밑도는 것은 경제성장을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가계부채 뇌관도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리스크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신호탄으로 향후 국내 시중금리가 덩달아 오르면 13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의 존재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 대출상환 부담 가중 → 소비ㆍ내수 위축 → 기업 투자 감소 → 다시 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공산이 커서다. 이미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인상속도가 가팔라졌다.

경제 회복해야 전성기 온다

대외 여건도 심상치 않다.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신흥국에서 자금을 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좋을 리 없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면서 가뜩이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수출기업 관계자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한국 기업을 두고 ‘보호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허리인 중소기업은 수출 대기업에 납품하는 만큼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한국경제가 어려워진 데에는 대외여건이 나빠진 탓도 있지만 정부가 경기 부양 정책을 잘못한 원인도 크다”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년 IPO시장 역시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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