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은 캔버스 위에 무언가 그릴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 작가의 에너지가 들어갈 필요도 없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선택해도 되고 제작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아이디어를 적은 종이를 공장에 건네면 그만이다.

1982년, 뉴욕 한복판 타임스퀘어 전광판 속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라는 문구가 이목을 사로잡았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사색에 빠졌다.
어록이나 속담도 예술
‘텍스트’를 작업 재료로 선택해 인쇄물이나 옥외 광고판, LED 전광판을 이용해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일반 대중들에 전하는 예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작품이었다. 그는 활자만으로 언어와 이미지에 무감각해진 현대인에 생각지도 못한 깨우침과 현명한 각성을 유도한다.

인류 문화사에서 위대한 혁명을 꼽으라면 언어의 사용과 문자의 발명, 그리고 인쇄술의 발명을 들 수 있다.
고려시대에 발명된 금속활자는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훨씬 앞서 발명됐다.
노주환은 컴퓨터와 인쇄 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활용 가치가 없어진 폐기된 금속활자를 수집해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한다. 다양한 크기의 활자 수만 개를 탑처럼 쌓아 올려 거대한 ‘활자 바벨탑’을 제작하는가 하면 작은 활자 하나하나를 전시장바닥에 세워 수많은 건축물 모형을 축조하듯 거대한 서울시 전도를 제작하기도 한다.
금속활자로 만든 일상의 예술
‘먼저 할 일부터 천천히’ ‘영혼의 자유’ ‘말, 몸조심’ ‘관심’ ‘자비’ ‘사랑’이란 글자가 벽면 한곳을 채우고 있다.(작품2- 먼저 할 일부터) 잘 그린 그림을 보면 감탄하듯 작가가 제시하는 글귀를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노주환은 작품에 개념적 의미를 관람객에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작품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처럼 쌓아 올린 탑(작품3 - 속담기둥)을 보면 작품 층층에 낯익은 속담구절이 새겨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잔 밑이 어둡다’ 등 170여개의 문구들이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처럼 우뚝 서있다.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 기둥 마디마디의 문구를 읽고 그 뜻을 생각하고 삶의 지혜를 얻어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우리네 삶과 지혜를 문자 탑으로 조형화했다.
이렇게 작가의 신조나 속담, 우리의 삶 속에 담겨 있는 문구를 조형화해 시각적으로 소통하는 어찌 보면 광고 디자인적인 반 미학적 발상의 전환이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삶의 행위가 예술임을 알리고 있다.

김종일展 - An apple
작가 김종일의 전시가 8월 1일부터 7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그는 멍이 든 사과를 극사실적으로 확대해 그림으로 자신의 내면을 대변한다. 또한 실제를 넘어서는 사과의 사실적 묘사와는 대조적으로 텅 빈 하얀 배경은 동양화적 여백의 미를 보여준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사과의 멍은 작가 개인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숨겨진 상처와 아픔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복 - 사유의 흔적展

임승오 바움아트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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