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은 개·돼지다’는 말은 올해 혐오 발언의 정점을 찍었다. 화자가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이전의 혐오 발언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왜곡된 서브컬처의 형태였다. 일베 유저들의 혐오 발언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었다. 자신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비하하면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지질한’ 행위로 평가돼서다.
그런데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혐오 발언을 내지른 거다. 우리 사회에 혐오 발언자와 혐오 대상자 간의 경계가 얼마나 흐릿해졌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경향이 얼마나 팽배해졌는지를 엿볼 수 있는 슬픈 단면이다. ‘혐오 발언을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전세계의 많은 운동가와 학자들은 혐오 발언(언어)에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혐오 발언은 폭력 행위이자 차별적 행위라는 거다. 대표 사례가 바로 KKK단이나 네오나치 집단의 위협이다. 혐오 발언의 법률적 규제 찬성자들에 따르면 KKK단 등의 행위는 불법적 폭력 행위 수준을 넘어섰고, 이들의 차별적·선동적 발언은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부정하는 행위다. 따라서 혐오 발언을 방치하는 건 이를 승인하는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므로 규제와 제재는 필연적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국가의 판단이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경우가 역사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이 의심스러운 정부의 판결은 소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인데, 혐오 발언도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는 거다. 버틀러 교수는 이 과정에서 청자가 혐오 발언의 표현이나 단어에 부르르 떨며 민감하게 맞받아치는 말도 함께 금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신 버틀러 교수는 혐오 발언을 듣는 소수자가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되받아쳐 말하기(speaking back)’나 ‘그것으로 말하기(speaking through)’를 통해 혐오 발언이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혐오 발언에는 절대적인 힘이란 없으며 혁신과 전복, 패러디와 풍자에 특히 취약하다는 거다.
예를 들어 ‘퀴어(queer)’는 원래 동성애자를 모욕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상징처럼 쓰인다. 흑인 차별적 표현인 ‘니거(nigger)’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백인보다 수입이 좋은 흑인 래퍼가 ‘니거’를 사용할 때 그 말의 모욕적 힘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내린다. 의미가 전복되고 해체되는 거다.
이런 버틀러의 주장을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한 단어가 떠오른다. 바로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는 페미니즘 논쟁의 핵심인 ‘미러링(mirroring)’이다. 미러링이 혐오사회 속 혐오 발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지속가능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미러링이라는 방식 자체를 둘러싼 찬반 논란도 뜨겁다.
그럼에도 혐오 발언에 대한 반작용으로 분출된 현상(결과)이라는 점에서 그 진행과정을 눈여겨볼 만한데, 버틀러 교수의 견해가 다양한 가이드 중 하나의 역할을 해낼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밖으로 나온 혐오 발언과 혐오사회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버틀러 교수의 분석을 따라가 보자.
세가지 스토리
「파이널 인벤션」
제임스 배럿 지음 | 동아시아 펴냄
인공지능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삶의 어떤 부분을 대체할까 등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경제적 가치에만 집중한다. 인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깔려있는 거다. 하지만 이 책은 인공지능의 어둡고 극단적인 면을 비춘다. 대중과의 소통 없이 기술 개발에만 치중한 전문가들의 경쟁심과 욕심을 고발한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 나무생각 펴냄
현대인은 남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개별적인 인간으로서의 활동이 아닌 사회·경제적 역할에서 자존감이 나온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행복과 편안함을 위해 만든 세계에 되레 복종하고 있는 셈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경험할 때 진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예리한 통찰이 담긴 글을 엮었다.
「은퇴절벽」
문진수 지음 | 원더박스 펴냄
100세 시대가 눈앞에 놓인 지금, 50대에 벌써 은퇴자가 된다. 늙은 부모를 봉양하고 청년 취업난에 빠진 자녀를 돌보느라 빠져나갈 돈은 많다. 그렇게 은퇴기의 중산층 다수가 빈곤층으로 내려앉는다. 저자는 노후를 개인적·금전적 문제로 몰아가는 사회를 지적한다. 아울러 각종 자료와 실제 은퇴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노후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한다.
노미정·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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