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국내 명문 A대학에서 취업을 앞둔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매학기 갈 때마다 대학생들의 생동감 넘치는 활기를 느낄 수 있었기에 즐거운 기분으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올해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어딘가 어색하고 학생과 강연자가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200명 이상이 참석하는 대형 강의여서 강연장이 후끈 달아오를 것이라는 예상은 무참히 깨졌다. 사회에 첫발을 들인다는 기대감, 의욕, 도전정신, 용기 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강의 후 이런저런 질문을 하려는 학생들의 줄이 짧아졌을 뿐만 아니라 취업 의지조차 꺾인 듯한 풍경이었다. “연초부터 많은 이력서를 보내며 구직활동을 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예전 선배들은 어느 대학 경영학과라면 보지도 않고 특채로 뽑아갔다는데 요즘은 눈 씻고 찾아봐도 그런 사례가 없어요.”
힘 빠진 우리 청년들
요즘 글로벌 기업들이 요구하는 최고의 인재는 4E(Energy·Energize·Edge·E xecute)인데, 면접 기회조차 없으니 필자의 강의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사회 문턱에 들어서기도 전에 자포자기한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겁이 덜컥 났다. 반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선 일을 할 경제인구가 턱없이 부족해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파격적인 방법으로 인재를 뽑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신입사원을 뽑는데 어려움을 겪던 일본의 한 증권사는 한국에서 공개채용을 하기도 했다. 5명 안팎의 인원을 뽑는데 연봉도 높고 조건이 좋았다. 5년 전 한국인 직원을 채용했을 때 좋은 성과가 있었던 점을 감안한 것이다.
근무 여건에 메스를 댄 기업도 있다. 최근 도요타 자동차는 직원 중 33%를 대상으로 8월부터 재택근무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유니레버 재팬은 근무시간과 장소를 사원이 자유롭게 택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사표를 쓰는 ‘경력 단절 여성’과 유능한 중견 사원의 퇴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우리나라의 사회·경제구조가 일본과 비슷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사례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지금은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청년실업률이 높아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청년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가져야 인구 문제가 해결된다. 취업을 해야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날로 높아지는 청년실업률은 사회 전체가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반대로 청년들에게는 더 멀리, 장기적으로 보는 안목을 가질 것을 당부하고 싶다. 일본의 구인난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도 IT와 상경계열 전공자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국내 취업시장에만 머무르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리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른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상황과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주고 소통하려 노력해야 한다. ‘지방의 산업단지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인데, 요즘 애들은 대기업만 고집한다’는 잣대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日 기업, 구인난에 시름
요즘 젊은 세대는 장년·노년층과 달리 빈곤의 시대를 살았던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주어진 일만 하는 기계적인 삶이 아닌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 기성세대가 이런 욕구를 인정해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러시아의 작가 고골리는 “청년은 미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좋은 삶을 보장해 주는 것,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깊게 내다보고 적절한 인구 대책과 고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 온 국민이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과제인 셈이다.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이사 susie@younpartners.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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