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을 가운데 앉혀놓고 참모들끼리 고성과 삿대질이 오간 끝에 대책 없는 대책회의가 끝난다.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회의 문화다. 불난 전라좌수영에 조선군 최고통수권자인 선조 임금이 기름을 붓는다. “칠천량 해전의 대패를 본즉, 우리 수군은 워낙 부실하니 차라리 권율 장군의 육군과 통합하라.” 권율 장군이 육전에서 패하면 “차라리 집어치우고 육군은 모두 이순신 함대 노나 저어라”라는 교지敎旨를 내릴 기세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해경이 부실하게 대응했으니 해경을 해체한다는 대책을 보는 듯하다.
선조의 교지를 받아든 이순신은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혔는지 피를 토한다. 왜군의 계략을 우려해 선조의 출정 명령을 거부한 ‘항명 파동’으로 환갑을 넘긴 몸으로 한양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당한 인두질 고문 후유증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다시 항명을 한다면 취조실에 이근안 경사급의 조선 최고의 고문기술자가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이 처한 현실과 아비가 처한 곤경에 그의 아들 이회는 비분강개悲憤慷慨해 “모두 때려치우시라”고 한다. “임금은 뻔뻔스럽고, 백성은 모두 제 한몸 챙기고 제 살길만 찾는데 우리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무슨 영화榮華를 보겠다고 이 개고생을 하면서 죽어야 하느냐”며 따진다. 해군제독의 아들이자 해군장교로서 대단히 불충하고 불온한 발언을 하는 아들에게 이순신은 말한다. “무릇 장수의 충忠은 백성을 향할 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는 창조적인 소수자가 극한의 도전에 응전해 온 과정”이라고 정리한다. 이순신이라는 ‘창조적인 소수자’는 임진왜란이라는 ‘극한의 도전’에 응전應戰, 한국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가 맞닥뜨렸던 극한의 도전은 어쩌면 압도적인 왜군 병력보다는 청년장교 이회의 분노처럼 위에서 아래까지 속속들이 썩은 조선의 현실이었을 수도 있다.
토인비는 “역사상 일어났던 22개의 문명 중 현재 미국사회가 보여주는 도덕 수준만큼 타락했던 19개의 문명이 멸망했다”고 경고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멸망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타락하고도 멸망하지 않은 예외적인 3개의 문명과 같은 ‘요행’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타락이 또다시 임진왜란과 같은 ‘극한의 도전’을 불러들인다면 ‘타락하고도 멸망하지 않은 예외적인 3개의 문명’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이순신과 같은 ‘창조적인 소수자’의 또다른 출현을 믿을 것인가.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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