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3000포인트 돌파는 어렵지 않다.” 2007년 후보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호언장담했지만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부산 시민께서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 2012년 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입에 담은 공언公言이다. 하지만 공언空言이 됐다. 우리나라 집권자의 말, 문제가 많다.

대통령의 말이 시장에 혼란을 준 일은 최근에도 발생했다.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영남권에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발언을 자주 내뱉었다. 2011년 3월 31일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대 총장 취임식 참석차 대구에 방문한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이 “이것(신공항 건설)은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다.
마침 다음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신공항 백지화’ 관련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공약을 파기했다”면서 이 전 대통령을 향한 비난 수위를 높였다. “앞으로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우리나라가 예측 가능한 국가가 되지 않겠는가.”

본격적인 선거 유세에 나서면서는 발언의 강도는 더 세졌다. 2012년 11월30일 부산 사상구 유세에서는 아예 ‘가덕도’를 입에 올렸다. “부산 가덕도가 최고 입지라고 한다면 당연히 가덕도로 할 것이다. 부산 시민께서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이 한마디는 ‘백지화 선언’에 사실상 끈을 놓고 있던 해당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계기가 됐다.
코스피 3000포인트 간다던 MB
박 대통령은 ‘신공항 건설’을 대선 공약집에도 명시했다. ‘100% 국민행복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지역균형발전’ 8대 핵심 정책에 신공항 건설을 포함한 거다. 이처럼 박 대통령은 ‘신공항 건설’을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다.
하지만 정작 당선이 되고나서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새정부 국정목표 140개항에는 ‘신공항’이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후보시절 수위를 높이던 신공항 발언도 당선이 되자 언급을 피했다.
그러다 6월22일, ‘신공항 건설 백지화 및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결정이 나자 박 대통령은 다시 신공항 관련 발언을 꺼냈다. “앞으로 김해 신공항 건설이 국민들의 축하 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김해공항의 확장을 ‘신공항’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공약을 파기한 게 아니라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한다”는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의 말과 맥이 맞닿아 있다.
하지만 집권자가 ‘신공항 약속을 지켰다’면서 발을 살짝 뺄 만한 상황이 아니다. 정부의 어설픈 계획이 시장과 지역에 엄청난 혼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지역 갈등과 허탈감이다. 신공항 이슈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영남권 신공항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니 벌써 10년이 넘은 해묵은 난제다. 지역과 시장은 이 난제를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해결해 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남을 두쪽으로 갈라놓는 역효과만 냈다.
그사이 조용한 마을에는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입지 후보로 꼽히던 밀양 하남읍 백산리와 명례리는 850가구 주민 180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낙동강을 낀 넓은 평야에 토질이 비옥해 농사가 잘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반드시 공항 짓겠다던 박 대통령
하지만 박 대통령이 던진 돌에 이 지역 부동산은 이상기류를 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6월 백산리 인근 계획관리지역 3342㎡가 3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3.3㎡당 40만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지난해만 해도 3.3㎡당 20만원대 초반에 거래되던 땅이다. 10년 전에는 3.3㎡당 6만원에 불과했다. 결국 정부의 허술한 비전이 지역 부동산 시장에 헛된 희망을 불어넣었다는 얘기다. 지역이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허탈감으로 돌변했음은 물론이다. 이를 예전처럼 돌려놓는데 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만큼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윤철한 경실련 국책사업 감시팀장은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계획도 없이 남발한 대통령의 발언이 땅값만 올려놓고 지역 갈등만 유발했다”며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계산하기 어려울 만큼 막심하다”고 꼬집었다.
김미란ㆍ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lamer@thr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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