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체온」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쑨 거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국 서민의 삶과 생활에서 중국과 중국인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에세이 「중국의 체온」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격변기를 살아가는 중국 서민의 일상을 상세하게 풀어냈다. 또한 서구가 걸어온 근대화의 틀에서 중국을 분석하려는 것도 비판한다.
책 속의 스물다섯편이나 되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키워드는 ‘서민’이다. 쑨 거가 바라본 중국 서민은 개혁개방에도 맹목적 소비문화를 거부하고 전통과 조화를 꾀하는 역동적인 사람들이다. 이것을 잘 드러내는 게 바로 ‘산채山寨 문화’다. 이 문화는 일종의 모조품 문화로 흔히 생각하는 짝퉁이나 해적판과는 다르다.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게’ 만들어 저렴하게 유통된다.
저자는 서민들이 ‘단종된 자신의 휴대전화 배터리를 산채판으로 바꾸면서 시장경제 이후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이런 소비경향은 빠른 제품 변화에 ‘저항’하는 서민의 생활양식이며 자본주의의 ‘속도’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다.

일본과의 관계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중국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일본인 캐릭터를 통해 중국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일본인 이미지를 포착한다.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문제로 양국이 한창 시끄러웠을 때도 흔들리지 않은 중·일 서민 간의 유대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중국 역사는 왕조 교체로 이뤄져 있지만, 왕조의 몰락으로 중국이 망한 적은 한번도 없다”면서 “평범한 생활인인 중국 민중이 늘 자기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숱한 정치·사회적 폭력을 온몸으로 견디며 일상을 지켜낸 중국 서민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때 느껴지는 묘한 감동이 책의 매력을 배가한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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