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ㆍblack consumer)’라는 단어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경쟁관계에 있는 빵집을 음해하기 위해 그 빵집에서 식빵을 산 후 쥐꼬리를 넣어 해당 빵집을 고소한 소비자가 있다. 어떤 소비자는 통조림에 사람 손톱을 넣은 후 이물질이 나왔다고 트집을 잡아 심리적 충격에 대한 보상으로 총 구매비용의 몇백배를 요구했다. 소소하게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가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음식 값의 몇 배를 요구하거나 보너스를 요구하는 소비자도 있다. 어디까지를 블랙컨슈머라고 해야 할지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기업은 종업원이나 상담원에게 반복적으로 욕을 하는 등 도를 넘은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소비자, 제품이나 서비스의 문제를 트집삼아 무리한 요구(주로 금전적 요구)를 하는 소비자를 블랙컨슈머라고 부른다. 반대로 선량한 소비자를 지칭할 때는 화이트컨슈머(선량한 소비자ㆍwhite consumer)라는 표현을 쓴다. 블랙컨슈머란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비자라는 의미에서 파생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게 문제다. 영어로는 말 그대로 흑인 소비자를 의미한다.
문제 있는 소비자 또는 악성 소비자를 말할 때 외국에선 문제 소비자(problem consumerㆍproblematic consumer) 또는 나쁜 소비자(bad consumer)라고 한다. 악성 소비자를 블랙컨슈머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적용되는 표현이다. 글로벌 시대에 특정 인종을 비하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주의해야 할 표현이다.
그나저나 누가 악성 소비자일까. 금전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고의로 이물질을 집어넣은 후 이를 빌미로 협박하는 소비자는 소비자이기 전에 범죄자다. 엄연한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가 사정이 생겨 취소하려고 온라인 여행사에 전화를 건 소비자가 있었다.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틈틈이 스무번 가까이 전화를 건 그 소비자는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자 폭발하고 말았다. 상담원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던 그는 자기가 기다린 시간만큼 상담원이 전화를 끊지 말고 계속 ‘미안합니다’는 말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악성 소비자일까 아닐까.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다가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고 다른 공짜 음식을 요구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다고 SNS에 과장된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소비자는 또 어떤가. 백화점에서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고 한두번 착용한 후 습관적으로 반품하는 소비자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를 둘러싼 기업과 소비자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거래에 임하는 소비자와 기업의 기대 수준이 달라서다. 또한 소비자의 문제 행동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이미 양측의 감정이 격앙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쁜 소비자를 줄이기 위해 기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선량한 소비자가 나쁜 소비자가 되지 않도록 문제해결 시스템을 만드는 거다. 소비자의 탈을 쓴 고의적인 범법자들을 처리하는 것은 다음 수순이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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