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자격증 이대로 괜찮나
서울 강남구의 한 논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K(37)씨. 그는 지난 2003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문예지도사ㆍ독서지도사ㆍ논술지도사 3개의 민간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이 취업에 도움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K씨는 “예전엔 이런 자격증이 흔치 않아 이력서에 한줄 정도는 추가할 수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그렇게 도움이 되는 자격증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K씨는 “문예지도사 자격증을 따니까 독서지도사와 논술지도사는 2~3시간의 강의만 들어도 그냥 발급해주더라”면서 “수수료만 내면 딸 수 있는 자격증이었다”고 꼬집었다. K씨가 딴 자격증은 ‘원 플러스 투 상품’이나 다름없었다는 얘기다.
K씨가 민간자격증을 딴 건 13년 전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되레 지금이 자격증을 따는 게 훨씬 쉽다. “최근 발급되는 대부분의 민간자격증은 1일 30~40분가량(주5일)의 인터넷 강의를 3~4개월만 들으면 웬만한 민간자격증은 다 딸 수 있다.” 종로와 강남의 교육서비스업체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런 민간자격증을 발급하는 민간자격등록기관도 2010년 441개에서 올 3월 4359개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참고 : 현재 자격증 시장의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최근에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으로부터 자격증 발급현황을 취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의무사항이 아니라서 공식통계를 만들 수 있을지 미지수다.]
스펙전쟁이 부른 자격증 범람시대
문제는 등록민간자격증이 국가공인 민간자격증과 다르다는 점이다. 국가공인 민간자격증은 현재 100개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등록민간자격증을 국가공인으로 오인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한국소비자원의 자료에 따르면 자신이 취득한 민간자격을 국가전문자격이나 국가기술자격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는 무려 61.3%에 달했다. 16.8%는 그런 구분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교육서비스업체와 자격검정사업자들이 ‘뜨는 자격증’ ‘곧 국가공인으로 인정받을 자격증’이라는 식으로 소비자들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들은 민간자격증 등록이 의무인데도 마치 특별한 인증을 받아서 등록하는 것처럼 홍보하기도 했다.
얼마 전 인터넷 강의를 통해 요즘 뜬다는 심리상담지도사 자격증을 딴 J(41)씨는 “동영상 강의는 컴퓨터에 창만 띄워놔도 강의를 들은 걸로 인정된다”면서 “가만히 보면 자격증 장사나 다름없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J씨는 “애초 자격증을 알아볼 때 ‘따두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업체에 속아 괜히 돈만 버린 것 같다”고 후회했다.
더 큰 문제는 민간자격증을 발급하는 기업이나 단체(일명 자격검정사업자) 등을 검증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ㆍ국무총리 산하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관계자는 “민간자격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자격기본법을 개정한 이후 자격검정사업자는 자신들이 어떤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는지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지만 그 사업자들에 자격증을 내줄 자격이 있는지는 따져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증 시스템 없는 민간자격증
최돈민 상지대(교직과) 교수는 “교육기관과 발급기관이 사실상 분리돼 있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발급기관이 교육을 겸하면 돈을 내고 해당 교육을 이수한 이들에게 유리한 시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격증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 자격증 발급기관이 자격을 검증할 때 필기시험뿐만 아니라 실기를 통해 능력을 검증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반드시 실기를 거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이런 이유로 민간자격증이 그나마 쓰이고 있는 공공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숭희 서울대(교육학) 교수는 “민간자격은 분명 필요하지만 질 관리가 안 된다는 게 문제”라면서 말을 이었다. “전문가집단이 나서 자격기준을 만들고 검증을 해야 하는데 이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여기에 정부가 공공서비스 영역이라는 이유만으로 민간자격증을 방치하면서 문제를 더 키웠다. 최소한 해당 자격증과 관련이 없는 협회나 기업이 자격검정을 하는 건 막을 필요가 있지 않겠나. 민간자격을 직업능력개발원이 아닌 별도의 전문기관에 맡기는 걸 단기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펙경쟁이 부른 민간자격증 범람시대. 가뜩이나 취업이 힘들어 눈물이 많아진 청년들을 또 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격증의 자격을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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