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검은 사제들 ❶

컴컴한 영화관에서 시종일관 컴컴한 화면 속의 컴컴한 이야기를 마주보고 앉아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엄숙한 신학생의 신분에서 일탈한 천방지축 개구쟁이 신학생 강동원의 가장 ‘강동원스러운’ 모습을 담았지만 ‘강동원 장르’를 충족하기엔 역부족이다.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흥행성적을 두고 일부에서는 ‘왜 2015년 한국, 서울에서 난데없는 서양의 구마驅魔의식을 다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악마의 존재 문제와 구마의식의 이야기는 2015년 한국에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가장 절실한 테마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어느 어두운 성당에서 두 신부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면서 시작한다. 젊은 사제가 노老사제에게 묻는다. “악마는 정말 존재하는가?” 노사제는 “악마는 인간세계 모든 곳에 숨어 있다”고 답한다. 젊은 사제가 다시 묻는다. “악마는 왜 숨어 있는가?” 노사제의 무거운 답변이 돌아온다.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면 인간들이 신神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미 십자회’로부터 인간세계에 숨어 있는 12악령 중 하나가 한국 서울에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왔다”면서 “우리가 퇴치하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
2013년 개봉한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월드워 Z(World War Z)’는 인류의 종말을 위협하는 ‘좀비 바이러스’가 엉뚱하게도 한국의 평택미군기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설정했다. ‘검은 사제들’에서도 가톨릭교회 본산을 긴장시키는 무서운 악마가 서울에 나타난다. 왜 하필 서울이 ‘악마의 근거지’로 설정되는지 조금은 억울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제들의 대화와 ‘악마’의 본질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도 된다.

혼합종교인 영지주의靈知主義(gnosticism)의 악마 데미우르고스(demiurgos)는 세상의 창조자다.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이 데미우르고스를 선하지만 허약한 하느님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악마를 지칭하는 루시퍼(Lucifer)나 이블리스(Iblis), 데미우르고스(Demiurgos) 모두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천사인 동시에 악마라는 얘기다.
프랑스의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장 디디에 뱅상(Jean Didier Vincent)은 그의 저서 「인간 속의 악마」에서 모든 인간 속에 똬리 틀고 있는 악마의 존재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내 안의 악마’는 보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집단의 악마성에만 눈에 불을 켜고 추적하고 추방하려 든다.
인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나타나는 악마 숭배는 획일적이고 난폭한 기존의 종교제도에 만족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왔다. 그리고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악마’ 딱지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악마숭배사상’의 토양을 제공한다. 영화 속에서 서양의 12악마 중 하나가 굳이 멀리 떨어진 한국의 서울을 찾은 이유인 듯하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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