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에 더 잔혹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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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구혜 문화전문기자
  • 호수 182
  • 승인 2016.03.18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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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인 | 무스탕:랄리의 여름

▲ 영화 ‘무스탕:랄리의 여름’의 장면들.[사진=더스쿠프 포토]
터키 북부의 이네볼루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부모를 여읜 다섯 자매가 할머니,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사건은 자매들이 하굣길에 남학생들과 물놀이를 즐기며 목마를 탄 것에서 시작된다. 할머니는 남학생들과 물놀이를 하고 돌아온 다섯 자매를 크게 혼낸다. 심지어 놀다가 처녀막이 터지진 않았는지 의심하는 통에 소녀들은 산부인과에 끌려가 순결검사까지 받는다. 그날 이후 다섯 자매는 삼촌의 감시 아래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다.

외출금지를 당한 자매들은 집안일을 배운다. 컴퓨터나 전화기처럼 바깥과 연결될 수 있는 물건들도 압수당한다. 할머니는 자매들에게 혼전순결과 결혼을 강요한다. 랄리는 축구 경기를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경기장을 가는 것도 TV를 통해 보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웃음소리조차 크게 내선 안 되는 ‘여자’에게 남자의 취미는 공유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다섯 자매는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할머니 몰래 집을 빠져나간다. 자매들은 억압에 반항하지만 물리적 힘으로 제압하는 주위 사람들 탓에 엄격한 통제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갇혀 지내던 자매들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광장으로 나선다. 그러나 그것은 신붓감을 구하는 남자들에게 자매들을 선보이는 품평회였다. 남자가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고르면 남자 쪽 식구들이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고, 거래를 하듯 결혼이 성사된다. 할머니 역시 그런 식으로 남편의 얼굴도 모른 채 결혼했다. 그러나 “그맘땐 다 금방 사랑에 빠진단다”며 자신의 과거와 자매들의 미래를 미화한다.

어른들의 감시를 피해 몰래 남자친구를 만나던 첫째 소냐. 그녀는 다행히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지만 둘째와 셋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들은 강제결혼으로 집을 떠난다. 막내 랄리는 이런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넷째 누르와 함께 도망친다.

이렇듯 영화는 터키의 여성 인권을 다섯 자매, ‘소냐’ ‘셀마’ ‘에체’ ‘누르’ ‘랄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무스탕:랄리의 여름’은 ‘데니즈 겜즈 에르구벤’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터키 태생의 감독은 억압 속에서 자유를 꿈꾸는 사춘기 소녀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을 그려냈다. ‘야생의 작은 말’이란 뜻을 가진 ‘무스탕(Mustang)’을 제목으로 붙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터키는 우리나라보다 14년 앞선 1934년에 여성 투표권이 생겼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성에게 혼전순결을 강요하며 명예살인을 자행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감독은 본인이 여성으로서 직접 경험한 것들을 필름에 담았다.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을 제한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터키의 분위기가 더욱 생생하고 극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작품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임에도 훌륭한 각본과 영상미로 칸 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여기에 개성 넘치는 다섯 자매를 연기한 배우들이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이란 점도 화제를 모았다.

지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무스탕:랄리의 여름’과 함께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손구혜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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