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는 일인가 노동인가
가사는 일인가 노동인가
  • 노미정 기자
  • 호수 182
  • 승인 2016.03.14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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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공무원과 건물주. 현재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흔히 말하는 자아실현과는 다소 거리가 먼 직업이지만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은 보장해준다. 고등학생이 바라보는 학교 밖의 세상은 웬만해선 꾸준한 수입을 보장받기 힘들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떤가. 주변에 물었다. “당신은 왜 일을 하나?” “지금 당신은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있나?”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하다. “무슨 자아실현? 먹고살려고 일하지.” 당연한 걸 무엇하러 물어보느냐는 의미의 코웃음은 덤이다. 고등학생이 공무원과 건물주를 선호하는 건 직장인이 일을 하는 이유와 같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대다수에게 ‘일’은 먹고살기 위한 생계수단으로 인식된다.

존 버드 미네소타대 칼슨 경영대학 교수의 시각은 다르다. 그에게 일은 ‘온전히 즐거움만을 위해 수행하지 않고, 경제적ㆍ상징적 가치를 가지며,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수반하는, 목적이 있는 인간 활동’이다. 그가 분류한 일의 개념은 저주자유상품직업적 시민권비효용자기실현사회적 관계보살핌정체성봉사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이 10가지 개념을 ‘억지로 해야 하는 저주’ ‘자유를 실현하거나 돈을 버는 수단’ ‘다른 사람을 섬기거나 돌보기 위한 수단’ ‘자기실현의 도구’ ‘사회적 관계의 연장’ ‘보살핌과 봉사’ ‘정체성을 보여주는 수단’ 등 개념을 규정하는 각각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이런 해석은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선 주류 경제학에서는 가족에서 이뤄지는 노동을 ‘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일을 바라보는 생각이 어떠냐에 따라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일을 상품으로 여긴다면 일은 시장의 손에 맡기면 된다. 일을 자기실현의 원천으로 여긴다면 개인 성취를 가장 앞세우는 방향으로 변해 갈 것이다. 성과급이나 최저임금, 국제무역 협정도 일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인적자원관리,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로 일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일을 신중하고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그동안 일을 주제로 한 책은 대부분 학술서나 자기계발서였다. 그러나 이 책은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가를 풍부한 사례와 해설로 풀어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일의 개념이 각각 어떤 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독자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의를 찾아갈 것을 권한다. 오늘도 일찍 출근했을 당신에게 존 교수가 묻는다. “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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