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공화국의 전철을 밟을 텐가
바나나공화국의 전철을 밟을 텐가
  • 김정덕 기자
  • 호수 179
  • 승인 2016.02.25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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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 제외한 내수책 필요하다

▲ 한국을 찾는 유커가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 관광산업 정책 전반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쇼핑하는 유커’를 겨냥한 면세점 전략만을 고집하는 정부와 업계를 향한 쓴소리다. 지금처럼 ‘쇼핑하는 유커’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한국 관광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로는 한국 관광산업의 미래도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바나나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름 그대로 이 나라는 바나나만을 생산한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걸 팔아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국민이 살아간다.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상대 국가가 바나나를 사주지 않으면 국가경제는 송두리째 흔들린다.

과거 냉전 시절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미국에 ‘바나나(1차 생산품)’를 공급하는 바나나공화국으로 통했다. 미국의 입김은 당연히 법이었다. 1989년 파나마 대통령이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가 돈이 되는 파나마운하를 국유화하자 미국 연방경찰(FBI)이 그를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 감금한 일화는 바나나공화국의 지위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최근 우리나라 관광산업이 이런 바나나공화국의 구조를 닮아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국을 찾는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수는 1420만명(2014년 기준)이다. 비중은 중국(43.1%)과 일본(16.1%)이 가장 높다. 나머지가 대만홍콩태국 등 범 중화권 국가라는 점, 영미권과 유럽권 국가들이 6.7%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관광산업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견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커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하는 건 뭘까. 다름 아닌 쇼핑(46.3%)이다. 업무수행(11.4%), 자연경관 감상(11.3%), 식도락 관광(5.6%), 회의 등 행사 참가와 공연 관람(4.8%)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국내 관광업계의 주요 타깃 역시 ‘쇼핑하는 유커’다. 국내 대기업들이 목숨 걸고 면세점을 사수하려는 것도, 유통업체들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가면서까지 유커를 한국으로 모셔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쇼핑하는 유커’가 확 줄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다. 이미 우리는 그 과정을 한번 겪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서다. 유커들은 한국 방문 예약을 줄줄이 취소했고, 상당수는 일본으로 발길을 돌렸다. 숙박업계과 외식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세월호 때보다 타격이 크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을 정도다.

한국 관광산업이 단지 유커 하나에 울고 웃는 형국이라면 바나나공화국의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면세점 사업 활성화 등 ‘쇼핑하는 유커’에만 초점을 맞춘 관광정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프라 개선과 관광상품 개발

이응석 딜로이트 컨설팅 상무는 “한국의 관광수입은 아시아 평균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외국인 관광객 1인당 지출 수준은 평균치 이하에 머물러 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상무는 “싱가포르는 2000년대 초반엔 한국보다 관광수입이 저조했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한국을 크게 앞질렀다”면서 “입국관광객 증가라는 기회를 맞았음에도 한국의 관광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저부가가치형 관광 중심이고, 변동의 폭이 넓은 한류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며, 지속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관광 인프라도 부족하다”며 “세계 관광소비 트렌드가 단순한 자연경관 관람에서 경험 중심의 관광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자연자원 개발이나 면세 쇼핑 중심의 한계를 벗어나 관광 인프라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프라 개선을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근거가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격년으로 작성해 발간하는 ‘여행&관광 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관광산업 경쟁력 순위는 141개 국가 가운데 29위였다. 꽤 높은 것 같지만 전년(25위) 대비 순위가 4단계나 떨어졌다.

분야별 경쟁력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물론 한국은 ‘우호적 환경’에서는 28위, ‘자연문화자원’에서는 22위로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정책과 이행 여건’은 82위로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훨씬 떨어지는 동유럽의 폴란드(23위)나 루마니아(35위)보다 훨씬 낮았다. ‘관광 인프라’ 역시 40위로 파나마(27위)나 바레인(33위)보다 뒤처져 있다. 한국 관광산업이 ‘쇼핑하는 유커’에 집중하는 동안 전체 관광산업 경쟁력은 계속 떨어졌다는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 수는 매년 10% 이상 꾸준히 늘고 있지만 관광수입은 8~20%대를 크게 오르내리고 있다. 관광객이 늘어도 돈 쓰는 이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건 아니었던 거다. 유커 유치보다 인프라 개선과 상품 개발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11년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한국 관광산업의 업그레이드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관광경험과 향상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융복합 상품 개발’ ‘관광상품 고급화 전략’을 언급한 바 있다. 쇼핑에 집중된 관광 환경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거다. ‘유커 유치’의 중요도는 그다음이었다.

유커, 쇼핑만 하라는 법 있나

‘쇼핑하는 유커’가 가져다 줄 이득은 취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취해야 한다. 다만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중동, 동남아와 남미 국가들로도 수출선을 다양화해 혹시 모를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한국의 관광산업에도 이 논리를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유커 외에도 전체 외국인 관광객 혹은 쇼핑이 아닌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유커들을 위한 관광육성책이 함께 필요하단 거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의 통계에 따르면 동북아시아 지역 관광객은 지난 1995년 약 4000만명에서 2030년에는 약 3억명 수준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동북아시아가 세계 관광시장의 핵심 목적지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중국의 경제성장과 맞물린 관광객 증가가 그 전제다. 중요한 건 지금 쇼핑 중심으로 관광을 즐기는 유커들이 나중에도 쇼핑만 하라는 법은 없다는 점이다. 면세점이 가져다주는 이득도 중요하다. 하지만 전체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더 시급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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