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자연재해, 돌발사고 등 경험하지 못한 예외적인 사건 ‘블랙스완’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메르스 사태’도 대표적인 블랙스완이다. 문제는 블랙스완으로 인한 1차 피해를 막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비상시 플랜만 잘 짜면 2차 피해는 능히 막아낼 수 있다.

설 연휴가 시작된 지난 6일, 대만에선 큰 재해가 터졌다. 대만 남부 타이난台南의 동남쪽 36㎞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6.4의 지진이 발생했다. 16층짜리 고층 건물이 무너져 수십명이 매몰됐고 타이난시 동구에 있는 창둥長東시장의 5층 건물도 붕괴됐다. 진동 체감도가 가장 강력했던 윈린雲林에서는 주민 2명이 떨어진 물건에 부딪혀 부상을 당했다. 이에 따라 지난 11일 기준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55명, 부상자는 549명에 달했다. 특히 전체 55명의 사망자 중 53명은 융캉永康구에 위치한 16층짜리 웨이관진룽維冠金龍 빌딩이 무너져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발사 명령서에 친필 서명했다”고 밝히며 김 위원장이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을 기뻐하는 장면도 함께 내보냈다. 지난 1월 6일 실시한 4차 핵실험 이후 연이은 북한 리스크가 터진 것이다. 이후 상황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한국 정부는 “극단적인 도발행위”라고 비판한 데 이어 지난 10일 개성공단 전면 폐쇄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난 11일 개성공단 내 남한 인원 추방과 남측 자산 동결, 개성공단의 군사통제구역 선포로 맞섰다. 북한 리스크의 영향으로 국내 증시는 출렁였다. 설 연휴를 끝내고 지난 11일 개장한 코스피는 1861.54포인트로 장을 마치며 지난 5일 대비 56.25포인트 하락했다. 지진, 폭설, 태풍, 테러…. 21세기 들어 재난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기습적으로 발생하는 테러와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감안하면 돌발 사고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바야흐로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블랙스완(Black Swan)’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얘기다.
블랙스완의 사례는 다양하다. 9ㆍ11테러(2001), 태안 기름 유출 사건(2007), 글로벌 금융위기(2008), 유로존 재정위기(2010), 한국 메르스 사태(2015),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2016) 등이 대표적이다. 블랙스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기후변화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블랙스완의 2차 피해 막는 비법
유엔재해경감전략기구(UNISDR)가 지난해 발표한 ‘자연재해에 따른 인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발생한 지진ㆍ홍수ㆍ태풍ㆍ가뭄 등의 자연재해는 6547건에 달한다. 그 결과, 같은 기간 60만6000명이 목숨을 읽었다. 연평균 3만명이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게다가 41억명에 달하는 사람이 자연재해로 다치거나 재산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이슬람국가(IS) 등이 자행하는 테러사건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방방재청 산하단체 한국BCP협회 관계자는 “지진의 2차 피해는 인간의 힘으로 능히 막을 수 있다”며 “가령 건물에 면진(진동을 없애는 것)ㆍ재진(진동을 약하게 하는 것) 설비를 구축하면 지진의 2차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위기관리 컨설턴트는 “블랙스완의 2차 피해는 구체적 대비책을 세워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블랙스완의 2차 피해 대비책, 이른바 ‘플랜B’를 세우자는 소리다.
전문가의 조언처럼 ‘플랜B’를 잘 마련하면 블랙스완을 되레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시계추를 2001년으로 되돌려 보자.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48분.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다. 항공기 자살 테러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일부 언론의 이목이 모건스탠리에 쏠렸다는 것이다. 세계무역센터 50층에 모건스탠리 직원 3500명이 상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셀 수 없이 많은 재무부 채권ㆍ유가증권 등 금융자산도 있었다. 국제금융시장 안팎에선 “모건스탠리는 끝났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테러 다음날인 9월 12일 모건스탠리의 각 지점은 정상 운영됐다. 업무 개시 30분 후 모건스탠리 필립 퍼셀 회장 겸 CEO(당시)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시스템을 복원했단 말인가”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비밀은 간단했다. 모건스탠리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사건 이후 비상상황에 대비한 플랜을 꼼꼼하게 만들었다. 비상대피 등 훈련을 수시로 했고, 긴급상황지휘본부와 주요 지원부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핫 사이트’라는 실시간 신규 파일 백업 시스템은 비상시 플랜의 백미였다. 그 결과 모건스탠리는 9ㆍ11 테러로 본사를 잃었지만 본업은 계속할 수 있었다.
이처럼 대비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CEO 등 리더의 역할이다. 리더는 건전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냉철한 통찰력으로 감춰진 위기와 주변의 조언을 해독해야 한다. 미 다트머스 경영대학원 시드니 핑켈스타인 교수는 자신의 저서 「실패한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중요한 장애물을 과소평가하는 CEO는 실패한다”고 꼬집었다. 리더라면 누구의 말이든, 그게 무엇이든 귀담아듣고 눈여겨봐야 한다는 얘기다.
똑똑한 리더가 막은 재앙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은 또 있다. 신속한 결단력이다. 한 위기관리 컨설턴트는 “블랙스완의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리더 스스로 ‘3~24시간 법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블랙스완이 발생한 후 3시간 안에 상황 파악을 끝내고, 24시간 내에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3~24시간 법칙을 가장 잘 활용한 경영자는 모건스탠리 퍼셀 회장”이라며 “사건 발생 24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건재함을 과시해 고객이 맡긴 자산이 안전하다는 걸 빠르게 알림으로써 고객 충성도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리더의 신속한 결단력이 블랙스완의 2차 피해 우려를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블랙스완은 늘 순식간에 찾아온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2015년 메르스 사태도 그랬다. 한국이 블랙스완의 안전지대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대재앙이 언제 어디로 밀려올지는 누구도 모른다. 블랙스완의 2차 피해를 막는 대비책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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