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BM 해임 후 “고정급 50% 토해내라” 소송
■ 1심 법원 “고정급 반환 요구 사회질서에 반해”
‘고정급’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금액은 매월 수백만원에 달했다. ‘인센티브’가 주 수익원인 보험맨의 마음이 새색시처럼 들떴고, 회사가 내민 손을 기꺼이 잡았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안면을 싹 바꾼 회사는 ‘고정급 중 일부를 빼앗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힘 없는 을乙로 전락한 보험맨이 ‘말이 다르지 않느냐’며 버티자 법적 소송까지 걸었다. 이 회사는 대체 어떤 곳일까. 답은 충격적이다. 산업은행 계열 KDB생명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KDB생명의 ‘고정급 갑질’ 논란에 펜을 집어넣었다.
손보업계 1위 M생명의 ○○지점장이었던 A씨. 2010년 11월 그는 산업은행 계열 KDB생명(옛 금호생명)의 러브콜을 받았다. KDB생명은 당시 수도권 등 전략지의 영업력을 강화하기 위해 능력 있는 보험인력을 스카우트하고 있었다. 대략 70명이 영입 제안을 받았는데, A씨는 그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러브콜을 받은 이들은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KDB생명의 낮은 인지도와 신뢰도가 영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KDB생명은 영입대상자들에게 ‘파격 조건’을 제시했다. 정착수수료, 이른바 ‘고정급’을 일정 기간 지급하겠다는 거였다. ‘인센티브’가 주 수익원인 보험인력의 마음을 뒤흔들 만한 매력적인 카드였다. 익명을 원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보험사 중에서 고액의 고정급을 주는 곳은 사실상 없다. 당시 KDB생명의 제안은 파격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A씨는 심사숙고 끝에 M생명에 사표를 던지고, KDB생명에 새 둥지를 틀었다. A씨와 비슷한 시기에 KDB생명의 러브콜을 받은 한 보험인력은 “수백만원의 고정급과 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계약조건으로 제시했다”면서 “이런 파격 대우를 마다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털어놨다.
2010~2011년 이름깨나 날리던 보험인력을 끌어들이면서 진행된 KDB생명의 영업력 강화책策은 ‘알찬 열매’를 맺었다. 2009년 2조1228억원에서 2010년 2조688억원으로 꺾였던 이 회사의 보험료 수익은 2012년 증가세(2조9395억원)로 돌아섰다. 자산도 2009년 8조2319억원에서 2012년 11조4731억원으로 39% 늘어났다. 당시 KDB생명에 영입된 한 보험인력은 “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다녔다”면서 “주말근무를 마다치 않고 일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데 KDB생명은 성과가 나올 무렵 안면을 바꿨다. ‘정착수수료 지급’을 약속하고 영입한 일부 PBM에게 직·간접적으로 계약변경을 요구했다. 2011년 8월 A씨에게도 ‘계약내용을 바꾸자(수수료 지급기준 변경동의서)’는 제안이 들어왔다. 원原 계약의 종료(2010년 12월~2012년 5월)가 9개월 남았을 때였다. 변경요구안案의 골자는 이랬다. “… 앞으로 2년 이내에 PBM에서 해임될 경우 정착수수료를 환수조치한다. 환수금액은 총액의 50%다. 다만 PBM에서 SM(부지점장)으로 신분이 전환되면 해임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1차 변경안이 원 계약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환수조항’이었다. KDB생명은 ‘PBM에서 해임되면 정착수수료의 50%를 토해낼 것’을 주문했다. A씨를 유혹했던 바로 그 정착수수료를 빼앗겠다는 거였다. 문제는 계약기간까지 KDB생명 맘대로 정했다는 점이다. 회사 측은 A씨와 계약한 지 9개월 만에 계약변경을 요구하면서 ‘앞으로 2년 이내에 해임될 경우(정착수수료 환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에 따르면 A씨가 애써 근무한 ‘9개월’은 허공으로 사라진다. 정착수수료를 반환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2년’을 잘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A씨에게 불리한 계약. 하지만 그는 1차 변경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KDB생명 측이 “서명을 하지 않으면 PBM에서 곧장 해촉하겠다(A씨 소송자료 중)”며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A씨가 사표를 던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받았던 정착수수료의 50%를 당장 반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상황은 똑같은, 그야말로 ‘2중3중의 환수책’이 발동한 셈이었다. A씨는 2013년 2월 SM에서도 해임됐다. B등급 지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KDB생명은 기다렸다는 듯 ‘정착수수료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반환요구금액은 4000만원이 훌쩍 넘었다.
A씨는 “처음엔 정착수수료를 어떤 경우에도 반환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곤 KDB생명에 입사하자 말을 바꿨다”면서 “보험인력의 열악한 지위를 악용해 계속해서 계약을 변경, 정착수수료 환수를 위한 근거를 만들어 나갔다(A씨 소송 준비서면 중 일부)”고 꼬집었다. KDB생명의 이상한 소송,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KDB생명이 ‘슈퍼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유력 보험인력을 ‘고정급’이라는 미끼로 영입한 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계약을 변경, 그 돈의 일부를 환수하고 있어서다. 특히 법적 지위가 약한 보험인력들에게 ‘정착수수료(고정급) 반환소송’까지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금융정의연대가 단독입수한 소송자료에 따르면 KDB생명은 지난해 중순 전 ○○지점장(PBM) A씨를 상대로 ‘정착수수료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골자는 계약기간에 지급한 정착수수료의 50%(약 4000만원)를 반환하라는 것이다.

실적 좋아지자 안면 바꿔
‘PBM에서 해임되면 정착수수료 반환(1차)’ ‘PBM에서 SM으로 강등된 후 SM의 실적 기준 못 맞추면 PBM 시절 받은 정착수수료 반환(2차)’ 등 두차례 변경된 계약 내용에도 법원은 문제를 제기했다. ‘지점장인 PBM과 부지점장인 SM은 신분과 지위가 완전히 다른데, SM의 실적을 기준으로 PBM 시절 받은 돈을 토해내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계약기간에도 일침을 놨다. “… KDB생명은 A씨가 근무한 지 9개월 됐을 때 변경계약을 요구하면서 ‘앞으로 2년 안에 해임되면 정착수수료의 50% 환수’라는 새로운 기간을 제시했다. 만약 이런 방식의 계약변경이 유효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KDB생명은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또다시 계약을 바꿔 ‘정착수수료의 환수를 위한 새로운 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 이는 사회 질서에 반한다….”
법률사무소 ‘지킴’의 김명종 변호사는 “보험인력은 일반적으로 정규직이 아니어서 법적 지위가 약하다”면서 “KDB생명은 이런 약점을 악용해 관련 계약을 수차례 변경, 고정급으로 지급된 정착수수료를 돌려받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KDB생명 측은 “계약기간에 지급한 정착수수료를 반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면서 “우리의 표준약관에 ‘반환규정’이 포함돼 있다”고 반박했다.

1차 계약이 종료된 2012년 10월엔 2차 PBM 위촉계약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2012년 10월 1일~2013년 9월 30일로, 정착수수료 지급 조항은 유효했다. KDB생명의 신뢰가 깊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KDB생명은 2013년 1월 느닷없이 B씨를 PBM에서 해임하고, SM으로 떨어뜨렸다. 동시에 ‘회사가 정한 실적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PBM 시절 받은 정착수수료의 절반(1551만여원)을 환수하겠다’는 내용의 새 계약을 밀어붙였다. ‘준 걸 도로 빼앗겠다’는 계약이었지만 ‘을乙’ 위치로 전락한 B씨에겐 저항할 힘이 없었다.
이후 결과는 A씨와 판박이다. 실적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B씨는 2013년 사임했고, KDB생명은 B씨에게 정착수수료의 50% 반환을 통보했다. B씨는 현재 KDB생명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정착수수료의 절반(채무)을 반환할 책임이 없다(부존재)’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전 ○○지점 PBM C씨는 B씨와 유사한 케이스다. KDB생명은 정착수수료 500만원(매월)을 약속하고 C씨를 PBM으로 영입했다. 계약기간은 2011년 1월~2012년 6월이었는데, KDB생명은 PBM 계약종료 직전인 2012년 4월 SM 위임계약으로 변경했다. 당연히 B씨처럼 ‘실적 기준에 못 미치면 PBM 시절 받은 정착수수료의 50% 반환’이라는 조건이 달렸다. 실제로 C씨의 실적이 SM 기준치를 밑돌자 KDB생명은 ‘정착수수료를 반환하라’고 독촉했다. 2013년 1월 KDB생명을 나온 C씨도 현재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형식적인 계약”이라며 회유
전 ○○지점 PBM D씨의 사례는 더 야비하다. 그는 2011년 1월 ‘매월 정착수수료 800만원 수령’을 조건으로 PBM 위촉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은 2011년 1월부터 2012년 6월까지 18개월이었고, 정착수수료 반환조항은 없었다. 그런데 계약을 맺은 지 5개월 후인 2011년 6월 KDB생명 측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PBM에서 24개월 이내에 해임되면 정착수수료의 절반을 환수한다’는 새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D씨는 ‘애초 계약과 180도 다르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자 KDB생명 측은 “사인을 해야 회사 규정상 급여가 나온다”면서 “환수조항은 형식적인 것이니 별 문제가 없다”고 거듭 회유했다. 뒤통수가 시큰거렸지만 D씨는 ‘설마 산은 계열사가 일개 PBM을 상대로 거짓말을 할까’ 싶어 별다른 의심 없이 서명을 했다.

D씨는 “KDB생명은 PBM 계약기간(18개월)과 정착수수료 환수면제기간(24개월)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설정해 PBM을 그만두면 정착수수료를 토해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면서 “그럼에도 KDB생명은 ‘지금 사직하면 정착수수료의 일부를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고지조차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DB생명이 놓은 덫에 자신이 걸려들었다는 얘기다. D씨도 현재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KDB생명의 ‘정착수수료 논란’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명종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2010~2011년 KDB생명으로 이직한 PBM 중 영리한 이들은 회사 측의 계약변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명을 거부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회사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정착수수료 반환소송에 얽힌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회사를 지나치게 믿은 것뿐이다. 산은 계열 생보사가 이런 짓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김득의 금융연대 대표는 “KDB생명은 아무런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기본급 형식으로 준 돈을 다시 빼앗으려 하고 있다”면서 “자사 보험인력과 맺은 약속도 손바닥 뒤집듯 쉽게 저버리는데, 고객에게는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소송 결과를 지켜보면서 KDB생명의 슈퍼 갑질 문제를 계속 따져 물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KDB생명의 ‘슈퍼 갑질’, 논란은 지금부터다. 똘똘하고 매서운 감시견(watchdog)이 필요할 때다.
이윤찬·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