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관상 ❹
‘대권’을 두고 수양(이정재)과의 최후 일전을 앞두고 심란했던 김종서(백윤식)는 실력을 검증받은 김내경을 만나면서 근심을 내려놓은 듯 기꺼워한다. 김내경이 자신의 상을 두고 세상에 감히 막아설 자가 없는 ‘거침없는 호랑이 상’이라고 확인해줬기 때문이다. 숙부(수양)의 역모를 경고하는 김종서의 주장을 반신반의하던 어린 단종도 결국 관상의 ‘운명론’을 받아들여 수양 제거를 위한 무력동원을 승인한다.
흥미로운 것은 문종과 김종서, 단종은 모두 고급 정보가 집결되는 최고 권부權府를 장악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보가 부족하거나 부실해서 김내경의 ‘관상’에 판단을 위임한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가 그들을 혼란 속에 빠뜨렸을 가능성이 높다. 정보가 넘칠수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분석의 마비현상(Paralysis of analysis)’이라고 불리는 소위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을 겪었을 거라는 얘기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요즘 세상도 비슷하다. 넘쳐나는 취업정보, 취업에 제시되는 필요조건과 팁(tip), 노하우를 모두 긁어모아도 취업은 안 된다.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모두 찾아먹어도 건강해지지 않는 것처럼 성공해서 부자가 되는 계명들을 모두 지켜도 성공은 멀기만 하다. ‘될 놈은 되지만 안 될 놈은 안 될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양의 왕위 찬탈을 막지 못한 김내경은 처절한 패배 끝에 남도 땅끝 마을로 돌아가 ‘수양은 그저 왕이 될 사람일 뿐이었다’고 자조한다.
‘분석의 마비현상’이 오면 그 결정은 직관적이거나 본능적이고 단순한 결정보다 차라리 못할 수도 있다. ‘지네의 딜레마(Centipede's dilemma)’라는 거다. 1000개의 다리를 가진 지네가 어느 다리를 어떻게 움직여야 가장 효율적으로 걸을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다리를 움직이려고 하면 다리가 꼬여 앞으로 가지 못한다. 그저 본능적으로 다리를 움직일 뿐이다.
지식정보화 시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분석 마비 상태’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수많은 젊은 ‘햄릿’들이 있다. 자신만의 멘토를 찾아 헤매는 그들 역시 최첨단 정보 기기들로 무장한 채 기생집 연홍 대신 ‘김내경’이 운영하는 사주카페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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