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혈압약이나 드세요
그냥 혈압약이나 드세요
  •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 호수 175
  • 승인 2016.01.21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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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혈압약이 만병통치약인 건 아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작은 콩알만한 알약을 매일 아침 먹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행위는 내가 고혈압 환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증상도 없는데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약을 챙겨 먹는 이들도 있다.

정말 이래야 하나. 잘못된 생활습관을 싹 바꾸면 어떻게 될까. 사실 약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개과천선 의지를 송두리째 뽑아 버리고 만다. 한달에 한 번씩 의사를 만나 처방전을 받고 약을 탄다. 그날 저녁에 이어지는 질탕한 술자리. 술에 덜 깬 채 아침에 일어나 내가 왜 이럴까 자책하지만 잠시뿐. 땅거미가 깔리면 또다시 어제 저녁의 반복이다.

80㎏을 넘나드는 체중과 술을 즐기던 10여년 전 필자는 혈압약을 권유한 의사에게 역제안을 했다. “술을 끊고 체중을 줄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의사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일화 한토막을 들려줬다. “약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간 고혈압 환자가 형광등을 갈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섰는데 그 순간 혈압이 올라 뒤로 쓰러져 죽은 일이 있습니다.”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증상을 개선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필자에게 의사가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준 까닭은 뭘까. 사실 그 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필자를 고객으로 만들려고 했을 수도 있고, 예비 환자의 안위를 걱정한 탓일 수도 있다.

2000년대 들어 당뇨ㆍ고혈압 등으로 대표되는 성인병이 청소년 시기로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나자 이를 생활습관병으로 개칭해 부르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흥미롭게도 이를 주도한 단체는 대한내과협회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예비 혈압환자에게 약을 권유할 게 아니라 생활습관을 개선하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어찌 됐든 필자는 혈압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형광등을 갈다 죽든, 백열등을 갈다 죽든, 고혈압 환자라는 꼬리표를 단 채 정기적으로 의사 앞에 불려 오긴 싫었다. 물론 병원에 들어서면 병원의 방침과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게 순리다. 의사 앞에 앉은 채 건강을 담보로 무모한 도박을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필자는 약에 의존하면서 살기 싫었다. 그래서 의사의 치료를 거부했고, 처방전도 받지 않았다.

순간 ‘비용이 덜 들어 좋다’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세컨드 오피니언을 듣기 위해 몇 군데 병원을 전전했지만, 대다수 의사의 반응은 비슷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약 드세요”라는 말을 입에 담을 뿐이었다. 시간과 병원비만 날린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고, 지친 필자는 더이상 병원을 찾지 않기로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필자는 본태성 고혈압 판정을 받은 날을 기념이라도 하려는 듯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과연 약을 먹지 않고도 형광등을 제대로 갈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지닌 채 말이다. <다음호에 계속>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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