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기름값 ‘D-공포’에 기름칠
낮은 기름값 ‘D-공포’에 기름칠
  • 김정덕 기자
  • 호수 175
  • 승인 2016.01.20 0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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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의 무서운 파장

▲ 국제유가가 20달러대로 떨어질 거라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의 예상이 적중했다.[사진=뉴시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국제금융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문제는 국제유가 하락세의 반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석유수출기구(OPEC), 미국 등 산유국들이 감산을 고려하고 있지 않아서다. 더스쿠프(The SCOOP)는 통권 170호 표지기사에서 ‘저유가 시대 무서운 시나리오’를 다뤘다. 골자는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디플레이션 가능성 등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20달러 선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던 일부 석유시장 전문가들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어서다. 지난 1월 4일 배럴당 32.10달러에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는 6일 배럴당 28.99달러로, 13일에는 27.02달러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36.76달러에서 30.48달러로, 북해산 브렌트유는 37.22달러에서 30.31달러로 하락했다. 평균으로 보면 열흘 만에 20%가량 떨어진 셈이다. WTI와 브렌트유는 간신히 3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추세라면 30달러선도 무너질 공산이 크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밑돈 것은 2003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1985년 중반 이후부터 떨어진 유가는 약 18년간의 회복기를 거쳐 안정화됐다. 그 과정에서 국제유가는 1998년 10달러대까지 떨어졌고, 1986년엔 10달러 이하로 내려간 적도 있다. 최근 국제유가가 10달러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스탠다드차타드(SC)는 12일 내놓은 유가 전망에서 “최근 국제유가는 달러화와 채권시장을 포함해 다른 자산가치의 변동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11일에는 바클레이즈, 매쿼리,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소시에테제네랄 등 글로벌 금융권들이 올해 유가 전망을 하향조정했다. 실제로 배럴당 10달러선의 원유는 이미 등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싼 서부캐나다 원유(WCS) 등 저품질 원유의 경우, 올해 초부터 20달러선이 붕괴돼 10달러 후반대에 거래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국제유가가 빠르게 하락할수록 한국 경제는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실화된 것도 있다.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가속화하자,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르게 이탈하고 있는 건 대표적 사례다. 조원희 국민대(경제학) 교수는 “국제유가가 더 하락할 경우, 국제시장의 큰손인 오일머니가 빠르게 투자를 줄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광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도 “미국의 금리인상 이후 유가가 20달러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의견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면서 “추가적인 유가 하락이 현실화되면 신흥국에 유입됐던 자금은 빠져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국제유가가 20달러대로 떨어지자 실제로 재정 불안감이 커진 중동 산유국들은 국내 증시에 투자했던 오일머니를 빠르게 회수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5년 말 사우디아라비아ㆍ노르웨이ㆍ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의 국내 주식 보유 규모는 29조7120억원이었다. 2014년 말 36조6210억원에 비해 18.8% 감소한 수치다.
 
특히 중동의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최근 1년 사이 국내 주식 보유액이 4조9820억원(31%)이나 줄었다. 월별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순매도 규모는 2015년 10월 1조8960억원에서 11월 3080억원으로 줄었다가 12월 다시 773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매도세가 빨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 가운데 약 10%를 차지하는 오일머니는 그동안 미국, 유럽계 자금과 함께 국내 증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극심한 저유가 국면으로 산유국들이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국내 증시 1900선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유가 하락과 함께 물가가 떨어지고, 내수가 침체될 수 있다는 거다. 돈의 가치가 오르면 더 적은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으니 내수 침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물가 하락의 전조는 이미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15년 수출입 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물가지수(원화 기준)는 83.52로 2014년보다 5.2% 하락했다.
 
‘투자금 회수’ 우려 현실화
 
수입물가지수도 80.36으로 15.3% 떨어졌다. 국제 유가 급락의 영향을 받았던 2007년 이후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당시 수출물가는 84.41, 수입물가는 72.74였다. 추가경정예산, 개별소비세 인하 등 각종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연초부터 소멸돼 ‘내수 절벽’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현재의 저유가 국면에 반전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유가 하락세를 멈추려면 공급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산유국들은 공급을 줄일 생각이 없다. 중동산 원유보다 채산성이 낮은 미국의 셰일가스는 유가 하락으로 생산량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의 석유회사들은 2015년 10월 일평균 935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했다. 그해 4월 일평균 생산량은 970만 배럴이었다. 미국 석유업계가 감산을 하지 않은 거다. 셰일가스 생산량이 줄인다고 해도 다른 산유국들이 감산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급과잉 상황에서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생산량을 줄일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 결과 미국 석유회사들은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미국 울프 연구소(Wolfe Research)는 2017년 중반까지 미국 석유ㆍ천연가스 생산회사 3분의 1이 구조조정이나 파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국적 로펌 헤인즈 앤 분(Haynes & Boone)에 따르면  이미 30개 이상의 소규모 석유회사들은 총 130억 달러 규모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 보호 신청을 제출했다.
 
석유 감산 기대감 없어  
 
글로벌 석유회사인 영국 BP사도 예외는 아니다. BP는 앞으로 2년간 직원 4000명을 줄일 계획이다. BP는 12일 성명을 통해 “2017년 말까지 석유 탐사와 생산부문 직원 수를 현재 2만4000명에서 2만명 정도로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BP의 감원규모는 전체 인력(8만4500명)의 약 5%에 해당하는 규모다. 
 
 
OPEC 회원국들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엠마뉴엘 카치큐 나이지리아 석유장관은 12일 “감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올 6월로 예정된 OPEC 정례회의를 앞당길 수도 있다”고 밝혔다. 나이지리아는 그동안 감산을 주장했다. 하지만 카치큐 장관의 발언 직후 수하일 빈 모하메드 알 마즈루이 아랍에미리트 에너지 장관은 “올 상반기는 매우 힘들겠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비회원국들이 생산량을 줄이면서 유가가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면서 인위적인 생산량 조절에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OPEC 회원국들이 분열돼 있어 원유 감산 합의가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중국의 민간 정유사들이 올해 원유수입량을 대폭 늘릴 계획이라는 게 그나마 희망적이다. 하지만 늘어만 가는 공급량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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