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관상 ❶

수양대군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기억나는 TV 드라마만 해도 ‘설중매’ ‘용의 눈물’ ‘정도전’ 등으로 무한 리메이크됐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다소 식상할 수도 있는 수양대군이라는 스테이크를 ‘관상’이라는 새로운 소스로 버무려 1000만 그릇을 팔아치운 셈이다. 스테이크의 질보다는 양념의 힘이 컸다. 합리성과 과학적 인과관계의 분석이 종교가 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관상’이라는 미몽迷夢의 맛에 1000만 관객이 미혹됐다는 게 경이롭다.
한재림 감독이 ‘관상’에서 재창조한 수양(이정재)은 관상부터 이채롭다. 영화에서 그의 첫 등장은 대단히 파격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넓적하고 선 굵은 얼굴에 중후한 풍모가 아니라 뾰족하고 가늘고 불량스럽다. 얼굴을 휘갈긴 징그러운 칼자국에 곰가죽까지 뒤집어쓰고 과도하게 어깨를 흔들며 수하들과 등장한다. 사고 치고 산채에 귀환하는 화적떼 두령이나 ‘어깨’들과 업소에 들어서는 ‘형님’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영화에서 “수양의 상은 군왕의 상이다”며 아첨을 하는 관상가들은 어딘가 미심쩍다. 끝까지 긍정도 부정도 않는 NCND 자세(Neither Confirm Nor Denyㆍ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국가정책을 말함)를 유지하는 김내경(송강호)이야말로 제대로 된 관상가임에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관상가 김내경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든다. 관상이 대체 무엇이기에 피바람 부는 권력투쟁에 휘말리게 됐을까.
관상觀相이라는 한자어는 흥미롭다. 황새 관雚은 ‘커다란 두 눈이 특징인 올빼미나 부엉이과의 새’를 뜻하는 ‘부엉이 환雚자다. 화등잔만 한 두 눈이 특징인 부엉이나 올빼미는 칠흑 같은 밤에도 뛰어난 시력과 평형감각으로 어지러운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고 날아 단숨에 먹이를 낚아챈다. ‘원샷원킬(one shot one kill)’의 상징이다. 여기에 볼 견見이 결합된 관觀은 결국 ‘치우침 없이 잘 헤아려 본다’는 뜻이다.
부엉이 환雚은 ‘황새 관’으로도 읽힌다. 물속을 잠시 주시하던 황새는 제아무리 민첩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동선을 그리는 물고기라도 단 한번의 입질로 잡아낸다. 사격으로 치자면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러닝타깃(running target) 종목의 금메달리스트감이다.
관상에서 형상 상像자를 쓰지 않고 서로 상相자를 사용하는 것도 특이하다. 상相에는 ‘상호 관련성을 자세히 보다’는 뜻이다. 결국 관상이란 얼굴의 모든 것을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고 상호연관성을 직관적으로 헤아려 이미 예정된 그 사람의 미래를 점치는 행위라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정치적 혼란기에는 수많은 정보, 오誤정보, 역逆정보가 난무한다. 이 때문에 부엉이처럼 어지러운 나뭇가지와 덤불(오정보와 역정보)에 걸리지 않고 날아야 한다. 부엉이나 황새처럼 목표의 예정된 동선을 예측해야 한다.
연홍의 앞에서 천재성의 한 자락을 선보인 김내경은 현장에서 전격 스카우트돼 한양으로 향한다. 1452년 계유정난癸酉靖難이라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두운 밤 가시덤불 속으로 ‘부엉이’ 김내경이 날아들면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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