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은 건물주가 다른 이에게 건물을 팔았다. 이 경우, 건물매수계약을 체결한 사람은 건물주를 형법상 배임죄로 소를 제기할 수 있을까.
인쇄업자 A씨는 불황의 찬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매출이 급격히 감소했고, 은행 빚은 껑충 늘어나서다. 그는 경기가 좋을 때 사뒀던 조그만 빌딩을 어쩔 수 없이 급매로 내놨다. 다행히 B씨와 매매계약을 체결했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C씨가 나타나 더 많은 금액을 줄테니 자기에게 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푼이라도 아쉬운 A씨는 건물을 C씨에게 팔고 소유권이전등기도 해줬다. 이른바 ‘부동산의 이중양도’다. 배신감을 느낀 B씨는 A씨를 형법상 ‘배임죄’로 고소했다. A씨에게 배임죄가 성립할까. 배임죄는 ‘다른 이의 사무를 보는 자가 그 임무를 반한 행위를 통해 재산상 이익을 얻고 그 다른 이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성립한다. 쉽게 말해 ‘다른 이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범죄의 주체다.
대법원은 부동산의 매도인 A씨가 중도금을 수령했을 때엔 잔금 수령과 동시에 매수인 B씨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이행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매도인 A씨는 ‘매수인 B씨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고, 이때 부동산을 이중으로 매도했다 배임죄가 성립한다. 이 판례에 따르면 A씨는 배임죄로 처벌받을 것이다.

대법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매매의 목적물이 동산(인쇄기)일 경우, 매도인 A씨는 매수인 D씨에게 계약에 따라 동산을 인도함으로써 계약의 이행이 완료된다. 그때 매수인 D씨는 매매목적물(인쇄기)의 권리를 취득한다. 따라서 매도인 A씨는 동산인도 채무 외에 매수인 D씨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그 행위에 협력할 의무는 없다.“
동산의 경우 매도인 A씨가 중도금을 받았더라도 ‘다른 이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매도인 A씨가 동산을 첫번째 매수인 D씨에게 인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E씨)에게 처분했다고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동산 이중양도 배임 아니야
대법원이 부동산과 동산을 달리 보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부동산 이중양도’에 배임죄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견해는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매도인이 중도금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매수인을 위해 ‘자기의 재산’을 보호ㆍ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매도인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여기서 언급한 사례는 부동산이든 동산이든 이중양도를 했을 때 형사상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민사상으로는 어떻게 처리될까. 제1매수인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지하고, 매도인에게 지급한 계약금과 중도금, 이자를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다. 이는 부동산이든 동산이든 똑같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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