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비웃듯 ‘작전세력’ 날뛰다
솜방망이 비웃듯 ‘작전세력’ 날뛰다
  • 강서구 기자
  • 호수 163
  • 승인 2015.10.3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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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 근절됐나

2013년 4월 18일 정부는 ‘작전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다. 결과는 어떨까. 정부의 구상대로 이른바 ‘작ㆍ세’의 힘이 빠졌을까. 그렇지 않다. 작전세력의 불공정거래 행위는 여전히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더욱이 수법은 더 교묘해졌다. 폐쇄형 SNS를 이용하는 작전세력까지 나타났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가. 더스쿠프(The SCOOP)가 ‘작전세력과의 전쟁’이 실패한 원인을 짚어봤다.


# 2014년 일반인 투자자 K씨는 코스피 상장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C씨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정보를 들었다. 그해 7월 코스닥 상장사 A사와 코넥스 상장사 B사가 곧 합병에 나설 것이란 얘기였다. 무심코 넘길 수 있었지만 정보의 근원지가 매우 확실했다. 합병이 될 B사의 임원 입에서 나온 정보였기 때문이다.

정보를 입수한 K씨는 이를 이용하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K씨는 인터넷 유로 주식투자 카페 회원들에게 “수익률 300%짜리 대박주가 있다”는 말을 흘렸다. K씨의 말에 관심을 보인 투자자가 모였고, K씨는 이들에게 폐쇄형 SNS인 네이버 밴드를 통해 합병 정보를 전달하고 시세 조종을 유도했다.

▲ 끊이지 않는 주식 불공정거래 사건으로 증권가가 몸살을 앓고 있다.[사진=뉴시스]
K씨는 통정매매(주식의 가격과 물량을 짜고 매매해서 가격을 올리는 것), 가장매매(매도와 매수 주문을 동시에 진행해 주식매매가 활발하게 보이게 하는 것), 허수매수주문, 시가ㆍ종가 관여 주문 등으로 363만2315주를 거래해 주가를 인위로 끌어올리다가 금융 당국에 적발됐다. 폐쇄형 SNS를 이용한 주가조작 사건이 적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K씨는 네이버 밴드의 경우 밴드 운영자의 승인이 있어야 참여할 수 있다는 점과 개설된 방을 폐쇄할 경우 대화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주가조작 도중에 또 다른 조작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K씨에게 처음 정보를 제공한 C씨는 K씨가 이 정보를 이용해 주가조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다시 악용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A사의 주식을 높은 가격에 매매하기 위해 K씨에게 중국 투자자가 A사 대주주 지분을 인수할 것이라는 허위 사실을 제공한 것.

그 결과 K씨는 이런 사실을 네이버 밴드 회원들과 공유했고, 다시 한 번 시세 조종에 나섰다. K씨가 네이버 밴드 회원을 동원해 A사 주식가격을 조종한 횟수는 총 3200회에 이른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시세 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부정거래 행위 등으로 C씨와 K씨를 검찰에 통보했다. 하지만 이들이 엄단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 지난해 11월 25일 삼성테크윈의 주식 거래량이 472만주를 기록했다. 적게는 30만주, 많아야 100만주를 넘지 못하던 하루 평균 거래량이 폭증했다. 이튿날 삼성과 한화의 빅딜이 발표됐고, 삼성테크윈의 주가는 3만3900원에서 2만8850원으로 폭락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투자자가 큰 피해를 보았고, 주가 조작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실제로 이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삼성테크윈의 매각 사실을 알게 된 전ㆍ현직 임직원 4명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회피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11월 긴급회의에서 삼성테크윈의 매각 정보를 알게 된 기획ㆍ총괄 부서 상무 A씨와 부장 B씨는 매각으로 인한 주가 하락을 예상했다. 이후 차명계좌 등으로 보유하고 있던 삼성테크윈 주식을 모두 팔아치우고 상승이 예상되는 한화 주식을 사들였다.
 
게다가 B씨는 삼성테크윈 전직 대표이사와 전무 등 3명에게 매각 사실을 알려 손실을 피하게 했다. 그 결과 B씨에게 정보를 받은 3명은 삼성테크윈의 주식 23억7400만원을 팔아 9억3500만원의 손실을 회피했다. 금융위원회는 고발 대상에서 제외된 전 임직원 한 명을 제외한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처벌은 벌금형에 그쳤다. 초범인 데다 부당이득을 모두 환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주가조작, 흔히 ‘작전’이라고 불리는 증권범죄(자본시장법의 불공정거래)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증권범죄는 주가조작(시세조정), 내부자의 미공개 정보 거래, 부정거래 등 크게 세 가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불공정거래 혐의(시세조종, 내부자 미공개 정보 이용 등)은 2009년 200건을 처음으로 넘어섰고, 2012년 271건을 기록한 이후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올해 초 주식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 불공정거래 혐의 사건은 6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3% 증가했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는 일반인이 주가를 인위로 조작해 시세차익을 얻는 범죄 행위다. 여기서 주가조작 행위 주체가 회사 내부의 고급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인물(오너, CEO, 임직원)이라면 ‘내부자의 미공개 정보 거래’로 구분된다. 내부자 미공개 정보 거래는 지난해 50건이 발생했다. 이 밖에 풍문 유포나 사기 수단 등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 이익을 얻는 부정거래는 12건, 시세조정은 54건이 발생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 코스피지수가 회복세를 보이자 불공정 거래도 늘고 있다”면서 “증시 회복기를 틈탄 시세조정 세력도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전히 성행하는 증권범죄


그만큼 주가를 의도해서 움직이는 세력, 이른바 ‘작전’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정보 수집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흔히 생각하기 쉬운 메신저, 증권 전문 사이트를 돌며 정보를 취합ㆍ유통하는 사람들은 ‘하수’다. 고급 룸살롱 웨이터를 상대로 귀동냥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진짜 고수는 증권사 직원, 애널리스트, 기업 CEO와 친분을 맺고 있다. 때론 기업, 때론 큰손으로부터 주가를 부양해 달라는 청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들 작전세력이 노리는 종목은 손쉽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중소형주’다. 작전을 세우기 안성맞춤인 종목이 넘쳐나고, 개미들의 대박 심리도 폭발 일보 직전이기 때문이다. 실제 작전세력에게 재료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개미들이다. 역설적이지만 개미들이 주가 부양의 지렛대 역할을 해야 이들이 돈벌이를 할 수 있다.

▲ 정부의 근절대책에도 주갖작 세력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사진=뉴시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 제 아무리 ‘대박주’라 하더라도 사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얘기다. 이른바 ‘카더라 정보’에 구체적 수치와 명쾌한 전망, 확정 문구까지 삽입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두 개미를 현혹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이 개미들의 눈과 귀를 막는 방법은 비상하다. 작전세력은 주가가 일정한 고점을 유지하면 허수주문, 가장매매 등 단계를 밟아 가며 주식을 판다. 개미들의 의심을 불식하기 위해 대량 매도에 따른 주가 하락을 막는 것이다. 최근엔 한 번에 여러 종목의 주가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의심을 피하고 있다.

작전세력이 이렇게 활개를 치는 이유는 솜방망이 처벌에 있다. 증권범죄의 제재 절차는 한국거래소 적발, 금융감독원 이송, 검찰 고발 등 세 단계다. 혐의자 입장에선 금감원에서 무혐의를 받으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설령 검찰에 고발돼 재판을 받는다고 해도 실형보다는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더 많다. 부과되는 벌금도 주가조작으로 얻는 부당이익에 비해 적다.

금감원은 지난해 195건의 불공정거래를 확인ㆍ조사했다. 그 가운데 24건은 무조치 처리했고, 35건은 경고조치 및 단기매매차익으로 조사를 완료했다. 경고조치와 단기매매차익 건은 경미한 사건으로 분류돼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는다.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한 건은 135건으로 전체의 69.2%였다. 문제는 고발 비중에 비해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증권ㆍ금융범죄 선고 건수 65건 가운데 실형을 받는 경우는 21건으로 32.3%를 불과했다. 하지만 집행유예 선고비율은 67.7%에 달했다. 100명 가운데 68명이 풀려나고 32명만 실형을 받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는 1심 판결이다. 통계를 냈다면 실형 비중은 더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정부의 주가조작 근절 의지에도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4월 18일 정부는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금융위원회 내에 증권 범죄 조사 전담 부서인 ‘자본시장조사단’도 설립했다. 게다가 양형 기준도 강화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낮아서 주가조작을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십억 또는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고 집행유예와 벌금 몇 억원만 선고받으면 남는 장사 아닌가”라면서 “주가조작을 할 수 있는 능력만 된다면 할 만하다는 얘기가 나올 법한 처벌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불공정거래를 막겠다고 천명했지만 여전히 처벌 수준은 낮다”면서 “이는 지난해 삼성과 한화의 빅딜 내부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전ㆍ현직 임원들이 벌금형을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고쳐지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로 불공정거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증권범죄가 중대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익명을 원한 한 전문가는 “증권범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은 더디다”면서 “벌금 액수를 늘려도 최대한도까지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 제재를 대표하는 과징금 제도도 빠졌다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미국 등 금융선진국의 경우 자본시장법을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자본시장법의 불공정거래 가운데 허위공시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법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8조는 부정거래행위(주가조작) 등의 금지행위 유형을 ‘부정한 수단ㆍ계획ㆍ기교’ 등 일반적, 포괄적,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금융투자상품의 매매와 그 밖의 거래를 유인할 목적으로 거짓의 시세를 이용하는 행위라고 명시하고 있다. 고의로 주가를 조작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고의성을 밝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고의성을 입증해 주가조작 세력을 붙잡아도 ‘부정한 수단ㆍ계획ㆍ기교’ 조항에 부닥치기 일쑤다. ‘고의성’보다 ‘부정함’을 입증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증권범죄는 갈수록 치밀해지는데 기존의 규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불공정거래 부추기는 ‘솜방망이 처벌’

사법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법을 명확하고 구체화해서 규정해야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 이를 죄형법정주의라고 하지 않은가. 그런데 주가조작 행위는 유형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규정하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주가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측 변호사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검찰을 공격한다. ‘수단ㆍ계획ㆍ기교가 부정한지 입증해 보라.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한 변호사는 “주가조작 행위자의 속내를 검찰이 직접 증거로 제시하면서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일정한 경우에는 주가조작 행위자가 조작 목적이 없었음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어려움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는 “주가조작을 사법 절차로만 규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시세조종 행위가 발견되면 즉각 주식 거래를 중지하는 ‘중지명령제도’, 취득한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부당이득 환수제도’ 등 다양한 행정 규제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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