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내 면세점 쟁탈 2차전의 막이 올랐다. 관세청은 9월 25일 롯데, 두산, SK, 신세계로부터 사업계획서를 받았다. 해당 서류를 꼼꼼히 검증한 뒤 11월 초 특허심사위원회를 꾸려 선정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격전지는 총 4곳이다. 11월부터 워커힐 서울 면세점(16일)을 시작으로 신세계 부산 면세점(12월 15일), 롯데면세점 서울 소공점(12월 22일), 롯데면세점 서울 롯데월드점(12월 31일) 순으로 국내 면세점 4곳이 사업 만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유치전은 지난 상반기 시내 면세점 선정 과정 때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1차 경쟁 땐 ‘입지’가 중요했다. 어디에 위치하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변수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당시 후보 기업들은 각 면세점 후보지의 지리적 장점과 교통의 편리함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번엔 입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후보지가 면세점이 이미 운영되고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차 경쟁에 나선 기업 가운데 두산을 제외한 롯데, 신세계, SK는 기존의 면세점 사업자들이다. 그렇다면 이번 면세점 쟁탈전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회 환원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면세시장의 독과점 문제가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면세점 사업은 국가가 독점 이윤을 보장하고 세금도 받지 않는 등 특혜성이 짙어 비판을 받고 있다.
총수까지 나서 상생 강조
이에 따라 후보 기업들은 심사위원들에게 면세점 사업의 혜택을 중소기업과 주변 상권에 나눠 주는 부분을 부각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결국 기업 이미지를 개선해 대기업 면세점의 부정적 시각을 완화하는 전략이 이번 경쟁의 핵심 코드가 됐다. 첫 포문을 연 것은 두산과 롯데다. 두 기업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12일) 기자간담회 일정을 잡고 각각의 전략과 비전을 제시했다.

신 회장은 이날 “롯데면세점이 앞으로 5년 동안 사회공헌 분야에 1500억원을 투자할 것이고 앞으로 202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해 ‘서비스업의 삼성전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와 더불어 신 회장은 1500억원 규모의 상생 전략 ‘상생2020’을 발표함으로써 재입찰의 명분과 당위성을 강조했다. ‘상생 2020’은 중소·중견 기업과의 상생, 취약 계층 자립 지원, 관광 인프라 개선, 일자리 확대 등 네 가지 핵심 추진 과제를 담고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200억원 규모의 중소 파트너사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하고 본점과 월드타워점의 중소브랜드 매장 면적 확대를 각각 두 배로 확대하는 한편 유망 중소브랜드를 발굴, 해외 진출을 돕겠다는 계획이다. 경영 상황이 어려운 지방 중소 시내면세점의 자립을 돕고, 명동·잠실 등의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지역 상인들과의 상생 프로그램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또한 본점에 초대형 LED 디지털 터널을 설치하고, 월드타워점 인근 석촌호수에는 세계 3대 분수쇼에 버금가는 대형 음악분수를 조성해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플랜도 내놨다. 두산도 ‘상생형 면세점’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걸고 면세점 유치에 나서고 있다. 두산은 동대문 상권 활성화와 K브랜드 글로벌화 등 두 가지를 두산면세점 사업의 축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침체를 겪고 있는 동대문 지역 상권을 살리는 한편 국내의 유망 디자이너 브랜드를 면세점에 입점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동현수 두산 사장은 “면세점 사업에서 발생하는 영업이익의 최소 10%를 순수한 기금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별도 재원을 들여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할 것”이라면서 “전체 면적의 40%를 국내 브랜드로 채우는 등 상생 면세점으로 키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5년 특허기간에 약 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다고 가정했을 때 그 10%인 500억원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거다.
또한 두산은 두타면세점을 한국 패션과 한류 문화를 세계로 알리는 전초기지로 만들겠다는 플랜도 밝혔다. 이런 밑그림을 발판으로 동대문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두산은 이번 입찰 참여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자체 물류센터가 없다. 면세점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보세관리 역량이나 브랜드 유치력 등이 처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산그룹 계열의 두산인프라코어 실적 부진에 직면하자 새로운 먹을거리 발굴이 절실해 면세점 사업에 진출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두산은 그룹의 시작이 ‘유통’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이런 약점을 불식시키고 있다. 동 사장은 “유통업이 두산에 새로운 사업이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 경쟁에서 패배의 쓰라림을 맛본 신세계도 상생 깃발을 내걸었다.
사회환원이 승부 포인트
서울 중구 회현동의 본점 신관을 후보지로 내세운 신세계는 주변의 남대문시장과 연계,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성영목 신세계DF 사장은 “명동과 남대문이 하나의 커다란 관광특구로 거듭나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신세계 바로 옆에 위치한 메사(MESA) 빌딩을 활용한 ‘상생 공간’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상생 전략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자필 서명을 담은 사업계획서에 직접 인사말을 넣어 “면세사업을 잘할 수 있는 신세계 그룹이 이번에 선택돼 관광산업에 이바지하고 사업보국事業報國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네트웍스도 지난 1차 시내 면세점 전쟁에서 고배를 들이켰다.

김은경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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