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반기문의 나라가 맞습니까?”
“이곳이 반기문의 나라가 맞습니까?”
  • 김다린 기자
  • 호수 162
  • 승인 2015.10.26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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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불허 외국인의 하소연

“이곳이 정말 반기문의 나라가 맞습니까?” 출국대기실에서 인권단체로 메일을 보낸 한 외국인의 질문이다. 이 외국인은 우리나라로의 입국이 거절됐을 뿐 범죄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열악한 환경의 출국대기실에 갇혀 있다. 법도 규범도 상식도 없는 이 공간에서 일어난 슬픈 에피소드를 정리해 봤다.

▲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공항 출국대기실 안에서는 기본 인권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출국대기실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안경이 깨져도 안경 구입이 쉽지 않다. ‘보안업체 직원에 보고→항공사 직원이 판단→출입국관리사무소의 허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작 안경을 하나 사는데도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인의 입국 불허를 결정하는 곳은 법무부, 그리고 불허된 이들이 모인 장소를 관리하는 곳은 항공사로 나눠져 있어서다. 법적으로 누가 출국대기실 상황을 책임져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보니 항공사와 법무부 모두 팔짱만 끼고 있다.

이처럼 환경은 열악한데 장기 체류자까지 증가하면서 사건ㆍ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인권 단체들은 출국대기실의 미흡한 의료 지원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의사를 부를 수 없다. 관련 법무부 직원과 항공사 직원, 용역업체 직원, 소송 변호사에게만 출입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사례를 보자. 지난 3월 2일 아프리카 콩고 출신 외국인 A씨 일행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난민難民 지위를 얻기 위해서다.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A씨 일행은 출국대기실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3월 20일 사건이 터졌다. 척추성 결핵을 앓고 있던 A씨가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법무부는 그제야 A씨에게 난민 신청 자격을 주고 입국 허가를 결정했다.

이후 법무부는 난민인권센터에 연락, A씨를 병원에 인도하게 했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총장은 “법무부는 A씨의 병세가 생각보다 심각해 보이자 그를 입국시켜 마치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A씨는 병원비로만 3000만원이 넘게 드는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A씨는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는 현재 국내에 체류하면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출국대기실에서는 의사보다 항공사 직원의 판단이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 아프리카 세네갈 국적의 외국인 B씨는 지난 2월 난민 심사 신청 불회부 결정을 받고 출국대기실로 보내졌다. 송환을 거부하던 B씨는 약 5개월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을 이어갔다. 그러다 7월 19일 B씨에게 호흡곤란 증상이 발견됐다. 구토를 하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보안업체 직원이 급하게 항공사에 연락했다.

의사도 들어갈 수 없는 곳

도착한 항공사 직원은 B씨의 상태를 보고 법무부에 구두로 임시 입국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원래는 임시 상륙허가서를 발급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항공사 직원의 간청에 법무부가 허락했다. 결국 B씨는 항공사 직원을 통해 응급실로 이송됐다. 다행히 치료를 일찍 받아 건강상의 큰 문제는 없었다. 당시 B씨를 접견하던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항공사 직원의 요청이 아니었다면 B씨의 건강은 더 악화됐을 것”이라면서 “출국대기실은 정부가 아닌 항공사 직원의 의지로 외국인의 생사 문제가 결정되는 비상식적 공간이다”고 꼬집었다. 그는 “문제는 항공사 직원 모두가 이렇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항공사에도 장기 체류 외국인이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 항공사는 법무부로부터 송환지시서를 받아도 송환을 강제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도 불법이다. 대신 이들은 외국인을 송환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쓴다. 빵과 음료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2월 세네갈 국적의 C씨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혔지만 출입국 관리사무소는 송환을 결정했다. 소송을 제기했음에도 C씨는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송환 권유를 계속해서 받았다. 그리고 항공사는 5월 6일부터 C씨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인권단체가 항의하자 사흘 뒤에야 다시 주기 시작했다. C씨의 절박함은 그가 인권단체에 보낸 메일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의 권리가 존중되는 국가,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국가에서 인간의 권리를 찾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이런 대우를 받을 줄 알았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4월 16일).”

“아무도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들은(항공사) 어제부터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덮는 이불도 가져갔습니다.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5월 7일).”

8월 11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집트인 D씨는 일주일 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역시 항공사의 송환 권유를 거절했다는 이유다. 이 기간에 D씨는 주변 외국인에게 돈을 주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법무법인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는 “오래 머무르면 항공사가 음식을 주지 않고, 항공사의 요청으로 출국대기실 밖을 나오면 돈이 없어서 식사를 할 수 없다”면서 “최근에는 ‘합법으로 굶어 죽든가 불법으로 굶어 죽든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합법으로 죽든 불법으로 죽든

식사 문제로 가장 크게 고통을 호소하는 건 이슬람 신자들이다. 이들은 최대 종교 행사인 라마단 기간(올해 6월 18일~7월 17일)에는 낮 시간에 금식을 해야 한다. 해가 지고 나서는 최소한의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주로 당분이 많이 포함된 간식거리를 먹는데 출국대기실 안에서는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김연주 변호사는 “그나마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외국인은 변호사를 통해 외부에 불합리한 현실을 알릴 수 있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외국인은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면서 “이 밖에도 관리자가 폭행과 욕설을 하거나 수갑을 채우는 행위를 목격한 외국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출국대기실을 체류하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C씨와 같은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이곳이 정녕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나라가 맞습니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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