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辛의 왕국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인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소송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롯데홀딩스 주주총회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리로 끝난 이후 침묵하고 있던 신 전 부회장이 화려한 고문단을 대동하고 ‘소송전戰’에 착수한 것이다. 신 전 부회장은 10월 8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롯데홀딩스 이사회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8일 오전 한국 법원에 호텔롯데와 롯데호텔부산을 상대로 이사 해임에 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롯데쇼핑에는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일본 법원에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롯데홀딩스 대표권 및 회장직 해임에 대한 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난 7월 롯데홀딩스 이사회의 긴급 이사회 소집 절차에 흠결이 있어서 없던 일로 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신 전 부회장의 명분은 이번에도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다. 신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위임을 받아 한국과 일본에서 롯데홀딩스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전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격노하고 상심한 (신격호) 총괄회장이 자신의 원상 복귀와 동생을 포함한 관련자들의 처벌을 원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총괄회장이 친필 서명한 위임장을 주면서 법적 조치 등을 포함한 일체의 행위를 맡겼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30일엔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제2롯데월드·롯데월드타워 현장을 방문하면서 신 회장과의 화해 분위기가 형성된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롯데는 ‘휴화산休火山’일 뿐이었다. 겉으론 조용했지만 지면 아래에선 갈등이 꿈틀대고 있었다. 신 전 부회장은 주총 패배 이후에도 경영권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총를 마친 후 회의장을 빠져나가던 그는 기자들에게 “친족 간의 갈등으로 많은 불안을 안겨 드려 진심으로 사죄한다”면서도 “내가 믿는 바를 관철해 나가기 위해 동료, 거래처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경영권을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발언이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은 예상과 달리 두문불출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갔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그러다 소식이 다시 들려온 건 9월 중순께 신 회장의 국감 출석을 앞둔 시점이었다. 신 전 부회장은 이 무렵 국내로 극비 입국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입국 날짜와 이유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과의 경영권 회복 협의를 위해 입국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바로 직전인 9월 10일 열린 호텔롯데 비공개 임시주총에서 신 전 부회장이 한국롯데 계열사의 모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선 신 회장의 국감 출석에 맞춰 본인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입국한 게 아니냐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은 이 무렵 신격호 총괄회장의 위임장 확보 등 소송 준비에 전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두 달여 만에 나타난 신 전 부회장은 만반의 채비를 갖춘 모습이다. 이날 기자감담회에서 신 전 부회장은 지난 7~8월 경영분쟁 때와 달리 옷깃에 롯데 배지를 달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SDJ코퍼레이션 회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법률 고문단도 대동했다. 전 산업은행지주 회장을 지낸 민유성 SDJ코퍼레이션 고문과 김수창 변호사(법무법인 양헌), 조문현 변호사(법무법인 두우) 등이 법률 고문단으로 이날 자리에 함께 했다.

신 회장은 일단 침묵을 택한 듯하다. 신 전 부회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그는 “알았다”는 답변 외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롯데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신 전 부회장의 소송 제기는 예견된 일”이라면서 “롯데 경영권 분쟁이 정리되는 시점에서 건강이 좋지 않은 총괄회장을 자신들의 주장을 위한 수단으로 또다시 내세운 건 도를 넘어선 행위”라고 비난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신 회장의 경영권이 상법상 절차에 따라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을 통해 적법하게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에 신 전 부회장의 소송이 현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 회장과 롯데그룹 측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롯데그룹은 국민과 약속한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 시내면세점 수성守成도 현안이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제기된 신 전 부회장의 소송이 신 회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롯데家 경영분쟁, 제2막이 올랐다.
김은경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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