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국가채무, GDP의 40% 시대

미국이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해 연방정부의 재정지출에 한도를 정하고 의회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시퀘스터가 작동되는 균형예산법을 제정한 것은 1985년. 달러를 마구 찍어내 돈을 쓰다 보면 달러화 가치가 떨어져 미국이 2등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였다. 균형예산법이 시행되는데도 적자가 늘어나자 새로운 재정사업을 벌일 때 재원 계획도 함께 내놓도록 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나름 성과를 거둬 재정적자가 감소하자 2002년 페이고 제도를 폐지했더니 재정적자는 이내 다시 불어났다. 이에 2011년부터 예산통제법에 근거해 해마다 향후 10년간 재정지출 절감 목표를 세워 실행하고 있다. 페이고 원칙도 2010년 항구적으로 부활시켰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1980년대부터 국가채무 등 총량적 재정지표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더욱 촘촘하게 강화하는 추세다. 독일은 신규 채무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0.35% 이내로 유지하도록 헌법에 명시했다. 영국도 GDP 대비 순채무 비율을 전년도보다 낮춘다는 재정운용 원칙을 2010년부터 시행 중이다. 스웨덴은 GDP 대비 1%의 구조적 재정수지 흑자를 달성해야 한다고 예산법에 규정했다.

급기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온 40%선을 넘게 생겼다. 내년 국가채무가 올해보다 50조원 불어난 645조원, GDP 대비 비중은 40.1%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7년 국가채무는 692조원으로 5년 새 249조원(56%) 불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늘어난 국가채무 143조원(48%)보다 훨씬 많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저출산ㆍ고령화 여파로 2018년부터 ‘인구절벽’이 예고되는 판에 재정절벽 상황까지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국민세금을 허투루 못 쓰게 차단하는 재정개혁에 나설 때다. 불요불급한 예산의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페이고 제도를 정착시키자. 정부나 정치권이 빚을 내서라도 쓰고 보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출준칙을 시급히 법제화해야 한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을 의식해 미적대다간 나라살림은 그리스처럼 급속히 망가질 수 있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