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에 있는 무허가집 “돈 받고 팔 수 있을까”
남의 땅에 있는 무허가집 “돈 받고 팔 수 있을까”
  •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 호수 156
  • 승인 2015.09.01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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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행의 재밌는 法테크

▲ 지상 건물의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건물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지상물매수청구권이다.[사진=뉴시스]
땅주인에게 매년 토지사용료를 내고 집을 짓고 살았다. 남의 땅에 있고, 허가도 받지 않았으며, 등기도 없다. 그런데 땅주인이 땅을 매각하려고 한다. 건물의 대가를 받을 수 있을까. ‘지상물매수청구권’을 살펴보자.

농촌마을이 고향인 A씨. 그는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그의 형제들은 그곳을 ‘우리의 집’이라 불렀다. A씨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아버지는 초가집을 허물고 양옥집을 지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집은 ‘우리의 집’이 맞았지만, 땅은 ‘우리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근 부모가 돌아가신 후 ‘우리의 집’은 갈수록 낡아졌다. A씨 형제들이 모두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집을 사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부부가 전원생활을 위해 집을 구한다는 것이다. 땅주인은 땅을 팔려고 하는데 집도 같이 팔았으면 좋겠다며, 집값을 얼마로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 왔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땅 주인에게 매년 토지사용료를 내고 있었다. ‘건물 소유를 위한 토지임대차’였던 거다. 번듯한 양옥집이었지만 등기도 안 돼 있어, 무허가 주택이었다. 옛날에 농촌에서는 관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건물을 짓는 예가 많았다.

그 집을 넘기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린 A씨 형제들은 건물을 매각하기로 했고, 땅 주인은 토지와 함께 건물을 팔았다. 그런데 A씨는 문득 자신들이 무슨 근거로 건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건물이 남의 땅에 있고, 허가도 받지 않았고, 등기도 없는데 말이다. A씨의 궁금증을 풀어보도록 하자.

건물 소유를 목적으로 맺은 토지임대차의 기간이 만료한 경우 건물이 현존한 때에는 임차인은 그 건물의 매수를 임대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이를 ‘지상물매수청구권’이라고 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건물의 잔존가치를 보존하는 건 바람직하다. 토지 소유자의 배타적 소유권 행사로 희생당하기 쉬운 임차인을 보호할 필요도 있다. 다만 임차인은 건물(지상물)의 매수를 청구하기 전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요구해야 한다. 임대인이 갱신을 원하지 않을 때에만 임차인은 건물의 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

앞에 언급된 사례의 경우는 ‘기간의 약정이 없는 토지임대차’라고 할 수 있는데, 대법원의 입장은 이렇다. “기간의 약정이 없는 토지임대차계약을 임대인이 해지한 경우에는 곧바로 계약갱신을 거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지상물매수청구를 할 수 있다.”

결국 땅주인이 땅을 제3자에게 팔기 위해 ‘기간의 약정이 없는 토지임대차’를 해지한 셈이 된다. 그러면 땅주인이 계약의 갱신을 거절한 것이라서 A씨 형제들은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땅주인이 A씨 형제들에게 건물값을 주겠다고 자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건물은 무허가이고, 등기도 없는데 지상물매수청구권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지상물매수청구권의 대상”이라고 못 박았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관청의 허가를 받은 적법한 건물이 아니더라도 임차인의 지상물매수청구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건물을 매수해 점유하고 있는 사람은 등기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권리의 범위 내에선 점유 중인 건물의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처분권을 가지고 있다.” A씨 형제들은 지상물매수청구권에 관한 민법 규정 및 판례에 따라 건물의 정당한 대가를 받은 것이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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