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빚 막으라니 밑 빠진 ‘서민 금융’
빚으로 빚 막으라니 밑 빠진 ‘서민 금융’
  • 강서구 기자
  • 호수 152
  • 승인 2015.08.0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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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금융 전문가 4人에게 묻다

▲ 서민금융 전문가들은“서민금융의 중심이 돈을 빌려주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서민층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돈이 들어갈 곳은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서민층을 돕겠다며 서민금융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민층의 삶은 개선되긴커녕 되레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서민금융전문가 4명에게 서민금융의 현주소와 개선점을 물었다.

햇살론ㆍ미소금융ㆍ새희망홀씨ㆍ바꿔드림론ㆍ보금자리론 등 서민금융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소득양극화 해소,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임무를 띠고 시중에 출시된 정책 상품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에도 서민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서민금융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7월 20일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김순영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박사, 이성수 신나는 조합 상임이사, 조금득 청년연대은행토닥 이사 등 서민금융 전문가를 만났다. 이들은 “서민금융의 문제점은 빚으로 빚을 막으려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무리 많은 재원을 투입해 서민금융을 활성화해도 소득이 살아나지 않으면 서민층의 삶은 벼랑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거다. 전문가 4명과 함께 우리나라 서민금융의 현실과 문제점을 짚어봤다.

✚서민금융이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서민금융의 정확한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이하 김득의 대표) : “그렇다. 학술적으로는 정립돼 있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민금융의 기준은 저신용자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낮아도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저소득ㆍ저신용을 서민금융의 대상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그 기준을 신용등급에 맞춰 나누기에는 범위가 협소하다.”
조금득 청년연대은행토닥 이사(이하 조금득 이사) : “신용등급에 의문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과거 신용카드 문제로 독촉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후 추심이 너무 두려워 소득이 생기면 신용카드 대금을 갚는데 사용했고, 그 결과 신용등급이 1등급이 됐다. 하지만 현재도 임금 수준은 높지 않다. 단순히 금융회사의 제도를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김순영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박사(이하 김순영 박사) : “서민금융이 무엇인지 학술적으로는 합의된 건 없는 듯하다. 사실 서민금융은 몇년 전만해도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었다. 1997년 IMF,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금융소외자,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면서 등장했다.”
이성수 신나는조합 상임이사(이하 이성수 이사) : “원래는 저소득층만 대출 대상이었다. 하지만 MB정부 이후 서민금융이 활성화되면서 신용등급이 기준이 됐다. 하지만 신용이 낮아도 부자는 있지 않은가. 현재는 신용과 소득을 모두 기준으로 하고 있다.”
✚서민금융의 효용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이성수 이사 : “서민의 생활안정 문제를 금융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그에 걸맞는 소득이 있을 땐 금융지원책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은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한 사람에게 금융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과 불안정한 소득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먼저다.”
김득의 대표 : “그렇다. 근본적으로 양질의 일자리와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100조원을 서민금융에 풀어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득 이사 : “청년 문제로 넘어가면 정책을 더 세부적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소득기준으로 할 경우 소외되는 청년층이 너무 많다. 취업률이 낮고 단기계약직•비정규직이 워낙 많아서다. 그런데 서민금융 대상에서 구직자를 위한 정책은 없는 게 현실이다. 청년을 위한 정책이 더 마련돼야 한다.”

서민 현실 고려 않는 서민정책

✚서민금융이 지나치게 많아 과도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김득의 대표 : “정책이 다양하지만 제대로 운영되는지 의문이다. 정부기관과 금융회사 모두 서민금융의 할당량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전시행정적 행태가 여전하다는 거다.”
김순영 박사 : “비슷비슷한 상품이 우후죽순처럼 나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홍보 미흡 등의 문제는 여전하다. 서민금융은 많지만 정작 서민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다.”

✚서민금융에 소비되는 자금으로 차라리 부채를 탕감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조금득 이사
: “고금리부채 탓에 악순환에 빠진 사람을 탕감해 주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일 수 있다.”
이성수 이사 :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정이 어렵다고 무조건 돈을 빌려주지는 않는다. 창업 자금처럼 돈이 필요한 사람에겐 금융정책을 적용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서민에겐 복지로 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김득의 대표 : “도덕적 해이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이다. 기업이 도산했을 때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개인 채무탕감을 언급하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등장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일정 시효와 원금 상환에 도달했을 때 채무를 변제해 주는 방법도 필요하다.”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의 규제는 여전히 과도하다.
김득의 대표 : “신용유의자의 정보가 과도하게 공유되고 있는 건 문제가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살인죄에도 공소시효가 있는데 채무에는 공소시효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일정 부분 이상 채무를 변제하면 나머지를 탕감해 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범죄자 대사면은 준비하면서 이런 부문에는 왜 관심을 두지 않는지 모르겠다”
김순영 박사 :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신용불량자는 대부분 정부정책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정부의 신용카드 남발정책이 불러온 참사라는 거다. 이런 면에서 도덕적 헤이를 이유로 과도하게 규제를 하는 건 문제가 있다. 파산은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채무자에게 불리한 면이 크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선입견이 크다. 이 역시 해소해야할 문제다. 누구나 한번의 실패는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청년층의 채무가 사회문제로 떠오른지 오래다.
김득의 대표
: “최근 청년 실업과 청년 신용불량자를 합친 ‘청년실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대학생 6만명이 평균 1500만원의 빚을 안고 사회에 나오고 있다. 청년층의 채무문제가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조금득 이사 : “청년층이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는데 평균 10년이 걸린다. 30대 중후반이 돼야 모두 갚을 수 있다는 얘기다. 청년의 삶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과도한 부담이다.”

빚 권하는 사회, 어찌 바꿀텐가

✚청년층을 위한 서민금융정책이 미흡하다는 의견에 공감하는가. 
 
이성수 이사 : “구체적인 통계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생을 대상으로 삼은 사업의 손실률이 매우 크다. 융자방식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은 금융회사, 비영리단체 등 공급자 입장에서 리스크가 매우 높은 사업이다. 현실적으로 청년층을 위한 금융정책이 어려운 이유다.”
조금득 이사 : “사실 청년에게는 취업지원 사업을 해야지 돈을 빌려주는 방식의 정책은 적합하지 않다.”
김득의 대표 : “청년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아르바이트 임금의 기준인 최저임금을 미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이성수 이사 : “카드 수수료 인하 등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을 줄이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피고용자는 근로기준법 등 사회보장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순영 박사: “생활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청년층에게 무턱대고 돈을 빌려주는 정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고용정책과 복지정책이 연계돼야 한다.”

 
✚청년을 위한 금융정책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순영 박사
: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청년층이 정책적 혜택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 정부 정책이 노년층에 집중돼 있는 이유는 노년층 정책이 바로 ‘표심票心’으로 작용해서다.”
조금득 이사 : “정책을 만들 때 청년층의 신분이 모호하다. 서민층으로 묶기도 힘들고 다른 계층에 포함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기존 대책에 청년을 끼워서 활용하려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이 없는 것이다.”
이성수 이사 : “금융정책 자체가 소득ㆍ자산ㆍ경제적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년을 위한 금융상품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특정그룹을 선별해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 금융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성수 이사
: “금융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을 체계적으로 이용하기 전까지는 그냥 돈을 빌리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가정주부, 구직상태의 청년층이 쉽게 금융악순환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는 금융지식이 부족해서다.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순영 박사 : “신용불량자의 경우, 현금서비스의 이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대기업에서 만든 신용카드인데 이율이 높겠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용한 고객이 많았다. 기본적인 금융교육, 이자율 등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

✚쉽게 돈을 빌리는 문화도 문제가 있다.
조금득 이사
: “다수의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으로 전환하면서 소비자가 저축은행인지 대부업체인지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득의 대표 : “대출은 광고를 하면 안 된다. 청소년 시간대 대부업체 광고를 규제했더니 이젠 대부업체가 인수한 저축은행의 광고가 쏟아지고 있다. 대출을 조장하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성수 이사 : “대출 광고를 이렇게 쉽게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서민금융은 수익사업 아닌 복지사업

✚서민정책이라는 서민금융의 본질이 금융회사의 돈벌이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순영 박사 : “다른 나라에 비해 서민금융의 이자율이 낮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금융회사가 연체율 문제로 수익성을 따지고 있다. 문제는 수익성을 해결하기 위해 문턱을 높이고 이자율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서민금융 정책에서 멀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다.
김득의 대표 : “서민금융을 만들기 전 제1금융권에서 서민을 위한 중금리 대출을 마련했다면 서민층이 저축은행ㆍ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IMF 이후 금융회사의 공적기능은 사라지고 오직 수익성만 강조하고 있는 게 가장큰 문제다.”

▲ 고용정책과 생활안정정책이 없는 서민금융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사진=지정훈 기자]

✚서민금융을 담당하는 금융회사가 없는 것 아닌가.
김득의 대표
: “저축은행의 대출이율은 대부분 대부업체 수준이고 연체이자도 살인적이다. 서민금융을 활성화하겠다는 본래의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있다.”
이성수 이사 : “외국의 경우 지역 밀착형 금융회사가 서민금융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처럼 수익성을 기준으로 대출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각종 규제에 막혀 시장진입을 못하고 있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김득의 대표 : “서민금융을 위한 금융회사가 없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주택은행ㆍ국민은행 등 특수목적은행을 민영화한 결과다. 우리은행 민영화 토론회에 참가한 한 전문가는 우리은행을 서민은행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는데, 일리 있는 말이다. 서민금융을 담당할 국책은행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중소기업은행이 있으니 그나마 중소기업이 양질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조금득 이사 : “지역 밀착형 금융의 사례로 ‘동자동 사랑방 마을 공제조합’이 있다. 지역 밀착형 사업이 진행되면서 금융과 의료지원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런 지역 밀착형 금융의 사례를 발굴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서민금융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한다면.
김득의 대표
: “서민금융보호 6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법이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금융회사 스스로 서민금융을 보호해주지는 않는다. 서민금융을 보호를 위한 제도적 제한이 필요하다.”
김순영 박사 : “서민금융의 목표는 금융에서 소외된 서민의 자활을 돕고 빈곤을 완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책은 빚을 늘리는 정책에 불과하다. 높은 이자율 인하, 부채탕감과 같은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조금득 이사 : “민간 차원에서 하고 있는 부채탕감 운동, 지역밀착형 금융과 같은 여러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시도가 일정한 성과를 내면 정부차원의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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