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 ➍ 엄홍길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Q 멘티가 멘토에게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포기하고픈 충동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공부한 만큼 성적이 안 나올 거 같으면 지레 포기하고 싶어요. 성과가 크든 작든, 또는 없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멘토가 멘티에게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 때 있죠.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패와 사고에 대한 두려움,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8000m급 16좌에 올랐지만 실패한 등정까지 모두 38번 도전했고, 16좌를 완등하는 데 22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38번의 도전 중 22번은 실패로 끝났고요. 해발 8586m의 칸첸중가는 세 번만에 성공했습니다. 거기서 형제나 다름없던 셰르파 다와를 잃었고 함께 등정에 성공한 박무택 대원은 그 후 초모룽마 등반 도중 사망했죠. 설벽에 매달린 채로 있던 그를 휴먼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에 묻어줬습니다.
8000m급 고봉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들의 영역입니다. 바위와 얼음, 눈만 있을 뿐 생물이라고는 일절 없죠. 기온은 보통 영하 20~30도, 날씨가 나쁠 때는 50도까지 떨어집니다. 히말라야에서는 내가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산이 나를 선택해 받아주는 것, 그게 순리이고 내가 산과 하나가 돼야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대부분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또 성공하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죠. 그런데 목숨 걸고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반면 8000m급 봉우리는 ‘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오릅니다. 베이스캠프를 벗어나 8000m급 봉우리에 오르는 동안엔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게 곧 사선을 넘나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리허설도 없이 바로 무대에 오르는 격이랄까요? 여러분이야 죽을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아닌데 죽을 힘을 다해 매달리면,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한다면 못 이룰 게 뭐가 있습니까? 후회는 오히려 죽을 힘을 다하지 않아 실패했을 때 밀려옵니다.

포기하지 않으려면 신념과 의지의 사람이 돼야 합니다. 저의 좌우명이 자승최강自勝最强입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거죠. 나 자신은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 즉 극복의 대상인 동시에 믿어야 할 존재입니다. 자기를 이긴다는 건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의지가 박약하다고 생각하면 ‘난 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자기암시를 해 보세요. 생각을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는 겁니다. 그 전에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 자신은 극복의 대상이자 신뢰할 존재
불가항력적인 상황도 있죠. 산에서 나는 인명 사고는 대개 그런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사전 예고 없이 벌어지죠. 그런 사고는 누구 탓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대장으로서 자책을 하게 됩니다. 살아 있는 저 자신이 너무나 밉고 떠난 동료에게 죄스럽죠. ‘운명이 뒤바뀌어 내가 떠났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신중함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일을 시작할 때는 물론 혼자 있을 때도, 작은 일의 처리조차 신중하게 하려 합니다(신시ㆍ愼始, 신독ㆍ愼獨, 신미ㆍ愼微) 운동경기야 지는 게 곧 실패고, 회사 경영이야 실패해도 아닐 말로 부도로 끝나지만 고봉 등반은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합니다. 등반대장은 실패에 대비해 제2, 제3의 대안을 마련해 둬야 합니다. 전반적인 상황을 꿰뚫고 있어야 할뿐더러 대원들의 건강과 심리 상태까지도 파악해야 돼요. 컨디션이 안 좋은 대원을 올라가게 했다가는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진정한 등반가는 산을 무서워하는 사람이고 험한 산을 오르는 등반대장은 독재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등정에 실패했을 때도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는 데도 실패했을 땐 후회가 그리 크지 않아요. 그런데 포기를 하고 나면 과연 마음이 편할까요? 포기를 해도 후회가 따르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 상실, 의욕 상실에 시달릴 수 있어요. 그런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포기하고픈 유혹을 이기고 성공하기 위해 그 단계를 넘어서야죠. 그래야 정상에 설 수 있습니다. 물론 포기하는 게 현명할 때도 있죠. 산에서 동료를 잃는 사고를 당하면 ‘내가 포기를 했더라면 이 사고가 안 났을 텐데’ 하는 후회에 빠져듭니다.
막상 포기할 때와 포기해서는 안 될 때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상이 성패를 좌우하는 히말라야 등반을 예로 들면 날씨가 안 따라줄 때가 포기할 때죠. 멈출 때와 가야 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과욕은 금물이죠. 그러자면 자연 앞에서 겸허해져야 합니다.
참 포기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등산은 경주하듯이 빨리 하는 게 잘하는 게 아닙니다. 체력을 안배해 가면서 자연을 보고 제대로 느끼고 즐겨야죠. 자연은 못 즐기고, 앞사람 뒤꿈치만 보고 줄기차게 오르내리다가는 관절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또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줘야 합니다. 산에 올라간다고 몸에 신호를 보내는 거죠.

16좌 완등을 하고 나니 허전했습니다. 마음이 휑했어요. 석달가량 방황했죠. 그러다 정신차리고 엄홍길휴먼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히말라야와의 약속인, 네팔 오지 학교에 현대식 건물 새로 지어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등반이 아닌 인생의 17좌에 도전하게 된 거죠. 지금까지 13곳에 지었습니다. 시설이 좋다 보니 주변 학교에서 아이들이 전학을 옵니다. 학생 수가 늘어나 교사가 더 필요한 몇개 학교는 우리 재단이 봉급을 주는 교사를 채용하도록 했습니다. 평생의 꿈을 이루고 정상에 오를 때마다 저를 내려 보내준 히말라야에 은혜를 갚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에 서면 언제부터인가 “이번에 내려가면 살아남은 자로서 받은 은혜를 갚으며 살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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