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골프금지령’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올해 메르스 사태로 전국 골프장은 최고 성수기에 2년 연속 직격탄을 맞았다. 이 와중에 한 정치인의 ‘도지사배 골프대회’가 정치적 이슈로 등장했다. 골프가 취미 스포츠가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게 참 불쌍하게 보인다.
필자는 한때 골프전문 기자, 회원권거래소 및 한국-호주 골프교류 관련 사업 CEO를 역임하면서 ‘골프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눈을 돌려 공무원(코레일 애드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공무원이 되는 순간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안 서재에 가득 찬 골프채, 각종 상패 및 골프관련 서적 일체를 처갓집에 ‘숨기는’ 일이었다. 공무원 생활 동안 업무든, 술자리나 사석이든 골프의 ‘골’자도 꺼내지 않았다.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는 순간, 내 스스로도 “치사하다”고 느꼈을 정도로 가장 먼저 한 일은 골프채부터 찾아오는 일이었다. 공무원 재직 기간 중 아쉽고 서운한 부분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골프채를 잡고 필드에 나서는 순간 해방감마저 느꼈다.
코오롱 그룹 창업주인 ‘우정牛汀’ 이동찬 회장의 생전 골프사랑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못지않다. 1985년 대한골프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뒤 이듬해 무려 65세가 돼서야 부인 신덕진 여사에게 골프채를 쥐어 주며, 스스로 레슨프로가 돼 골프를 가르쳤다. 이동찬 회장이 1980년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시작할 때 필자는 농구담당기자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대한골프협회 회장 역임 기간(1985~1996년)과 필자가 골프담당기자로 활동한 시기도 같다. 기자간담회, 인터뷰, 동반 라운드 등 근거리에서 이 회장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1993년 우정牛汀힐스 골프장이 오픈됐을 때 칠순의 부부가 정겹게 라운드하는 모습은 고인이 되신 두 내외분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언제 어느 때라도 함께 라운드할 수 있는 아내이자 골프친구를 둔 것이다.
등산이 취미인 사람이 주말에 산을 못가면 다음 일주일이 찝찝한 것처럼, 골프 마니아에게 “골프를 왜 치느냐?”고 힐난하면 대단한 실례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중에 골프를 안 치겠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해외순방 때도 주1회 이상 라운드를 안 하면 좀이 쑤신다는 클린턴 대통령이 1993년 방한했을 때 골프라운드 대신 함께 조깅을 했는데,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언론은 ‘조깅외교’라고 그럴듯한 컷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정작 김영삼 대통령이 1989년 안양CC(현 안양 베네스트)에서 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와 18홀도 모자라 27홀을 돌면서 역사적인 ‘3당 합당’을 일궈낸 사실은 아이러니다.
전 세계에서 좀 산다는 나라 중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 중 하나가 ‘골프금지령’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올해 메르스 사태로 전국 골프장은 그야말로 ‘작살파티’가 났다. 연중 최고성수기(5~6월)였기에 타격이 컸다. 미국 LPGA투어에서는 연신 대한민국 여자프로골퍼들의 승전보로 방송과 신문 지면을 장식했고, 6월말 청라 베어즈베스트CC에서 열린 한국여자오픈에는 갤러리가 2만여명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골프가 취미든 아니든, 올 상반기의 공무원, 공직자, 저명인사급들에게는 가서도, 봐서도, 언급해서도 안 되는 골프가 됐다.
지난 7월 1일 홍준표 경남지사가 오는 9월 기존의 축구, 테니스, 족구, 배드민턴, 탁구에 골프를 추가해 ‘도지사배 골프대회’를 연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시민단체 등에서 극단적인 반발이 쏟아졌다. 홍 지사는 “공무원 사기가 많이 죽었다. 공무원들이 골프장에 가면 자기 아들 명의, 가명으로 치는데 그럴 필요없다. (골프에 대한) 국민정서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골프채를 들고 골프장에 모습만 나타내도 파면되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결정을 내린 홍 지사에 대해 비판이나 동의할 생각은 없다. 골프가 그냥 취미 스포츠가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게 참 불쌍하게 보이는 요즘이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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