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와호장룡 ❶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 환상적인 액션을 연출했던 무술감독 원화평의 ‘환상액션’이 그대로 재연되고, 세계적인 일본계 첼리스트 요요마의 느리면서도 깊고 애잔한 첼로 선율이 영화의 비장미를 더해준다. 이 영화는 1920년대 ‘왕두루’라는 인물이 쓴 동명의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통상적인 무협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 무협영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통상적인 무협소설과 무협영화는 대개 권선징악의 구도 하에 정도正道와 사도邪道의 대립을 다룬다. 그리고 궁극적인 정도의 승리에 이르기까지 창과 검이 난무하고 피가 강을 이루며 시체가 산을 이룬다. 반면 이 영화에서 정확한 사망자는 ‘푸른여우’를 추적하던 베이징北京의 감찰관 한명과 ‘푸른여우’ 단 두 명에 그친다. 무협영화치고는 폭력과 살상에 지독하게(?) 인색한 셈이다.

영화 속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대략 19세기 초 청조淸朝가 붕괴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질서가 아직 태동하지 못한 극도의 혼란기를 상정하고 있다. 왕두루라는 작가가 소설 「와호장룡」을 집필한 1920년대 역시 청조의 붕괴, 1911년 중화민국(대만)의 건국, 1949년 중국공산당의 태동이 뒤섞인 대혼란의 시기였다. 아마도 왕두루는 그가 직접 목격하고 느낀 중원의 혼란상과 시대변화의 움직임을 리무바이(주윤발), 슈리엔(양자경), 용(장쯔이), 파란여우와 전설의 보검인 ‘청명검’을 통해 그리려 한 것 같다.
19세기 초 중원의 무림은 무림의 패자 ‘무당파’의 수장 강남학이 그의 여제자 ‘푸른여우’에 의해 독살되고, 비밀리에 전수되는 무당파의 무술 연마서 ‘무당심결’이 도난당하면서 일대 혼란에 빠진다. 이런 혼란을 강남학의 수제자 리무바이가 수습하고 무림의 최고수로 등장해 중원을 안정시킨다. 그러나 무림을 제패한 리무바이는 강호의 삶이 덧없음을 깨닫고 그가 소유한 전설의 보검 ‘청명검’을 무림의 쟁패와 무관한 중립적 인사 ‘표대인’에게 맡기고 무림을 떠난다.
그러자 리무바이에 의해 구축된 강호의 질서는 돌연 등장한 ‘용’이라는 당돌한 젊은 여인무사에 의해 소용돌이친다. 명문대가의 딸인 용은 ‘무당심결’을 훔친 푸른여우의 제자가 돼 익힌 무공을 이용해 기존 질서를 뒤집는다. 마침내 리무바이의 ‘청명검’까지 훔쳐 리무바이로 상징되는 무당파의 ‘구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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