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권리도 있다
모를 권리도 있다
  •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 호수 148
  • 승인 2015.07.01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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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장미의 이름 ❾

▲ 윌리엄 신부는 인간의 알 권리를 위해 숨은 정보를 찾아 나섰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러시아의 소설가 솔제니친은 윌리엄 신부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옛 소련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결국 당국으로부터 추방됐다. 동경해 마지 않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다. 몇 년간 미국과 캐나다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 후에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츰 호르헤 신부같이 변모해 갔다. 솔제니친은 한 강연회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그동안 인간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는 점만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 권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모를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흔히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지식과 정보가 선善은 아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아는 게 힘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알아야 할 것’만 아는 것이 힘이다. 불행하게도 모든 인간이 어떤 정보든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지적·정신적으로 성숙하지는 않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간들에게만 아는 게 힘이 된다.

▲ 앗소가 말한 윌리엄 신부의 죄는 지식·정보 공개의 문제를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했다는 건 아니었을까. [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이다. 같은 물이라도 고로쇠나무가 먹으면 고로쇠 물이 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된다. ‘지식과 정보의 바다’는 항해술을 익혔거나 수영을 할 줄 아는 이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렇지 못한 자는 그곳에 빠져 죽을 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채 바다에 뛰어들어 익사하고 있다. 그 사회적 비용도 결코 만만찮다.

지식과 정보를 수용할 만한 준비가 안 된 인간들에게 제한 없이 그것들을 제공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불행이고 사회적으로도 파괴적이다. 원작 소설과 달리 영화 속에서 호르헤 신부는 완전히 망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움베르토 에코는 ‘거만하게도’ 자신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독자들이 모두 이해하고 읽었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대중이나 보통 사람들의 지적·이성적 성숙도에 회의적인 인물이다.

에코는 괴테·하이데거 등과 마찬가지로 대중이 지식·정보를 수용하는 능력에 대해 그리고 그들에 의한 역사 문화의 발전 가능성에 매우 회의적이다. 아마도 에코는 지적·이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인간에게 모든 지식과 정보를 허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호르헤 신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듯하다. 지식정보화 시대인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윌리엄 신부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표현의 자유를 줄 것을 주장한다. 일견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이고 지극히 정당한 요구로 여겨진다.

그러나 과연 모두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모든 지식과 정보를 여과하고 소화할 만한 능력을 갖췄는지. 그렇게 소화한 지식·정보를 바탕으로 사회의 주요 결정에 참여할 만한 자격을 갖췄는지. 이런 것은 물음표로 남은 상태다. 그래서 우리 사회 호르헤 신부들의 고민도 깊어간다. 에코가 앗소의 입을 빌려 말하는 윌리엄 신부의 ‘죄’라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공개하는 문제를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했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인간의 ‘알 권리’만 강조했지 인간의 ‘모를 권리’에는 무신경했다는 건 아닌지 말이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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