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지난 4개월이 저한테는 1년처럼 느껴집니다. 변협이 법률가 단체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조금 했고 그래서 주목도 받았다고 자평합니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 테헤란로 대한변협회관 18층. 취임 4개월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하창우 변협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그는 ▲사시 존치 ▲전관예우 타파 ▲검사평가제 도입 ▲상고법원 설치 반대 ▲변호사 배출수 감축 및 일자리 창출 등의 공약을 내걸고 회장(제48대)이 됐다.
‘사법 개혁’을 내세운 그는 이미 법조계 안팎에서 껄끄러운 존재가 됐다. 대법관 출신 전관예우 금지에 발 벗고 나서는가 하면 검사평가제 도입도 서두르고 있다. 변협과 함께 ‘법조 3륜’으로 불리는 법원ㆍ검찰에 각을 세우고 있는 것. 그게 다가 아니다. ‘사시 존치’라는 공약 실천을 위해 변협 내 주요 세력인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과의 마찰도 피하지 않고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 같은 사람(판ㆍ검사 출신이 아닌 순수 재야 변호사 출신)이라야 그런 일(사법 개혁)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자신이 사법 개혁의 전도사임을 자처했다. 하지만 요즘 국회까지 가세해 큰 이슈가 된 ‘사시 존치’ 문제는 결코 호락호락한 사안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우리 사회가 큰 비용을 지불하고 수립한 ‘로스쿨 도입, 2017년 사시 폐지’ 정책을 불과 2년을 남겨두고 뒤집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 사시 존치 문제를 둘러싸고 ‘변ㆍ변 갈등’까지 생겼습니다.
“폐지를 반대하는 연수원 출신 변호사와 폐지를 원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대립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변협 회원은 아무래도 로스쿨 출신이 조금 적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기 때문에 집행부에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제가 사시 존치 공약으로 당선된 만큼 변협 집행부는 폐지 반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 그렇다면 사시 존치 공약이 실현될 것으로 보시는지?
“현재 사시 존치 관련 법안 5개가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그중 1개만 통과하면 사시는 존치됩니다. 다만 법안 국회 통과에는 큰 진통이 예상돼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봅니다.”
✚ 계류 중인 5개 법안을 좀 소개해 주시죠.
“‘5개 법안이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사시 존치는 기본으로 다 들어 있고, 세부사항만 좀 다를 뿐이죠. 이를테면 변호사 시험성적을 공개하느냐, 사시 응시 자격을 로스쿨 재학생에게 주느냐, 마느냐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발의자 중 율사 출신은 한 분입니다.”
최근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 사시 존치 문제를 빠르게 공론화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소위 ‘취약계층의 희망 사다리론’ 을 등에 업고 있다. 사시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 시절 ‘사시 낭인浪人’ 양산 등 적폐가 많다는 이유로 2007년 없애기로 했던 제도가 부활을 꿈꾸게 된 것이다. 대안 제도인 소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은 시행 7년째를 맞고 있다. 따라서 ‘사시 폐지냐? 존치냐?’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정책 선택의 문제지 개혁의 문제는 아니다. 이 점이 개혁전도사를 자처하는 하 회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4기 졸업생까지 이미 6000명에 달하는 법조인을 양성한 로스쿨 쪽 반대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변수다. 자칫 밥그릇 싸움과 사시 기득권 유지로 비칠 경우 존치의 정당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는 상황이다.
✚ 변협은 로스쿨과 사시를 병행하자는 입장인데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현재 연간 배출 법조인은 약 2000명인데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인구가 우리의 2.5배, 국내총생산(GDP)이 4배 규모인 일본에 비해서도 많습니다. 배출 숫자를 연간 1000명 정도로 줄여야 합니다. 사시 200명, 로스쿨 800명으로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사시 존치 주장의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문제입니다. 판사ㆍ검사ㆍ변호사가 되는데 왜 3년제 대학원을 나와야 합니까. 돈 없는 서민의 아들딸들이 독학으로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겁니다.”
✚ 로스쿨 정원이 현재 2000명 정도인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로스쿨 법조인 배출을 연간 800명으로 줄이려면, 로스쿨 통폐합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성이 없거나 변호사 합격자 수가 적은 학교는 통폐합하거나 정원을 줄여야 할 겁니다.”
✚ 사시 출신이 대다수인데 제도를 병행하면 로스쿨이 정착할 수 있을까요?
“사시 존치 정책은 로스쿨과 병행하는 정책입니다. 로스쿨 폐지가 아닙니다. 로스쿨의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로스쿨은 로스쿨대로 법조계의 주류 제도니까 잘 한번 키워서 우수인재를 배출토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로스쿨 법안은 2007년 통과됐고, 2009년부터 학생 모집을 시작했다. 이에 따르면 기존 사시를 통한 법조인 수급은 2017년을 끝으로 없어지게 된다. 별도의 조치가 없는 한 2021년부터 법조인 배출 창구가 ‘로스쿨 졸업, 변호사시험 합격’으로 단일화된다는 얘기다.
변ㆍ변 갈등… 큰 부담으로 작용
✚ 로스쿨 제도가 정착되면 사시 독점 때보다 법조 서비스가 개선되지 않을까요?
“사법제도가 다루는 영역이 굉장히 다양한 만큼 로스쿨 제도의 장점이 많습니다. 공대ㆍ의대ㆍ약대 등 의과계열 출신들도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로 배출됩니다. 지금까지 사시 제도에서 볼 수 없었던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 점은 인정해야죠.”
✚ 변호사 2만 시대를 맞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데요.
“젊은 변호사들이 나와도 취업할 곳이 없어요. 법률 시장은 포화상태입니다. 일자리 부족 현상을 못 풀면 젊은 변호사들의 불만을 해소할 방법이 없어요. 로스쿨도 변호사 합격자를 늘리는 데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배출된 많은 변호사를 취업시키는 직역職域 창출에 나서야 합니다. 기존 제도로는 부족한 만큼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이 있죠?
“국가를 당사자로 한 소송에서 국가 소송 수행자는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로 한다는 법을 발의하려고 추진 중입니다. 곧 의원 입법으로 발의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입법이 되면 변호사 일자리가 굉장히 늘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자꾸 입법을 통해 직역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늘릴 계획입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세부사항만 좀 남았어요. 검사평가제는 제가 2008년 서울변협 회장 시절 도입한 법관평가제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피의자의 인권과 직접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죠. 작년에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피의자만 22명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검사평가제 연내 도입 준비 ‘끝’
✚ 검찰에선 반발하지 않나요?
“검찰도 특별히 반발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국민들의 권리 보호가 잘 된다면 좋은 제도가 아니냐’고 말한 분도 계셨어요. 어떻든 껄끄럽긴 하겠죠. 이 제도를 통해 피의자 인권이 보장되고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면 결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것 아닙니까.”
✚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시는데 찬성 분위기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상고법원 설치에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습니다. 변협이 반대하는 이유는 위헌 문제 때문입니다. 헌법 101조는 ‘법원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만약 상고법원이 각급 법원에 해당된다면 4심제가 되는데 이게 타당할까요. 그럴 경우 재판을 받는 데 시간과 비용도 더 들게 됩니다.”
✚ 대안은 무엇입니까?
“대법관의 연간 사건처리 건수는 작년 기준 총 3만8000건입니다. 12명이 1인당 3000건 이상 처리해야 된다는 얘기죠. 상고법원을 만들지 말고 대법관 수를 2~3배로 늘리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 아닙니까(2배 늘리면 28명, 3배 늘리면 38명). 왜 그렇게 못 하죠.”
✚ ‘사법 전관예우 타파’는 계속 강도 높게 추진할 겁니까?
“당연합니다. 우리 사법계에서 없어져야 할 고질적 병폐이기 때문입니다. 제 임기 동안 계속 싸워 없애도록 할 겁니다. 전관예우를 받고 개업을 하시자는 분을 제가 막았어요. 또 새로 대법관이 되려는 분도 국회에서 변호사 개업을 안 하겠다고 국민에게 맹세토록 만들었습니다. 일단 제가 막았더니 한 국회의원이 퇴임 후 대법관 등의 변호사 개업을 막는 법률을 발의했어요. 앞으로 대법관 지낸 분이 개업을 안 하는 새로운 전통이 수립될 겁니다.”

“제가 제일 먼저 추구하는 건 사법 개혁입니다. 개혁이란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입니다. 그 과정에서 충돌ㆍ대립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처음엔 충돌과 반발이 생기지만, 길게 보면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 개혁을 하기에 임기 2년은 좀 짧지 않을까요?
“개혁 과제를 다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서울변협 회장 등 업계 일을 10년간 해봐서 법조계가 뭘 개혁해야 할지는 잘 압니다. 지금의 여러 정책은 지난 30년간 재야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직접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기도 하고요.”
✚ 변협이 최근 ‘2019 세계변호사협회(IBA) 총회’를 유치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개최는 처음이고, 아시아에서도 작년 일본에 이어 2번째입니다. 전 세계 70여 개국 변호사 7000여명이 2019년 서울에 모이는 겁니다. 한국 홍보 및 경제적 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별도 위원회를 만들어 코엑스 일대 호텔 예약 등 치밀하게 준비할 생각입니다.”
✚ 음악 애호가에다 그림 그리기까지 즐기신다죠.
“그림 그리기는 시간 있을 때 취미삼아 합니다. 고향인 경남 남해군 이동면 이동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그림(수채화)을 배운 게 계기가 됐어요. 음악은 1974년 대학(서울대 법학과) 1학년 봄 축제 때 클래식을 처음 들은 게 인연이 됐고요. 이후 40년 이상 즐기고 있습니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박소현 더스쿠프 기자 psh056@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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