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장미의 이름 ❽

그러나 그들조차 호르헤 신부가 ‘치명적 바이러스’라고 판단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는 접근할 수 없다. 호르헤 신부는 「희극론」 페이지마다 독을 발라 ‘치명적 바이러스’에 노출된 이들을 죽여, 바이러스의 확산을 원천봉쇄하려 한다.
호르헤 신부의 모습에서 중국의 진시황제와 캄보디아의 폴 포트(Pol Pot)를 볼 수 있다. 2200년 전 진나라 시황제는 법가사상과 농사서, 점복술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제외한 모든 ‘바이러스성’ 문헌을 불사른다. ‘쓸데없는’ 지식의 연구와 확산에 매달리는 ‘바이러스의 숙주’인 선비들은 구덩이에 묻어 버린다. 이유는 단 하나. 천신만고 끝에 통일한 제국의 통합과 안정을 위해서다. 40년 전 캄보디아의 폴 포트는 안경을 쓴 자들을 ‘유해한 지식과 정보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로 유추해 머리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씌워 질식사시킨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700년 전 호르헤 신부가 빠졌던 고민의 성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지식정보화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의 소유ㆍ선별ㆍ수용, 그리고 공개ㆍ확산에 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시대다. 농경 시대에는 토지, 산업화 시대에는 자본,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의 소유, 그리고 그 전파 수단의 소유가 권력으로 환원된다. 그만큼 지식ㆍ정보를 공개 또는 공유해 달라는 요구가 강해졌고, 실제로 많은 지식과 정보가 공개ㆍ공유되고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고민은 과연 그 많은 지식과 정보가 모두 유익한 것인지, 또한 누구에게 어느 만큼의 정보를 공개할 것인지, 모든 사람들이 그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대로 소화할 능력과 소양을 갖추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다. 호르헤 신부의 고민도, 진시황제나 폴 포트의 광기와 극단적인 처방도 같은 고민에서 시작됐을 것 같다. 그 고민의 해결 방법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례로 인터넷을 지식과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데, 그게 좋은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최근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적으로 하루에 100억통의 이메일이 교환되고, 약 500억개의 웹사이트가 존재하지만 그중 90% 이상이 무익하거나 유해한 정보다. 성매매ㆍ불륜을 조장하는 채팅, 포르노ㆍ도박ㆍ자살ㆍ범죄 수법ㆍ사치ㆍ과소비ㆍ과시 등 ‘천민자본주의로 가는 지름길’에 관한 온갖 정보가 무제한적으로 범람한다.
호르헤 신부가 700년의 시공을 건너 오늘날 대한민국의 너절한 사이트들을 접한다면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 그 사이트들을 여는 순간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폭발해 버리는 장치라도 개발했을까. 진시황제라면 온 나라의 컴퓨터를 모두 압수해 웹마스터들과 함께 핵폐기물처럼 어디 외딴섬에 파묻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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