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렸는데도 명군 제독 ‘꽁무니’
그렇게 말렸는데도 명군 제독 ‘꽁무니’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 호수 147
  • 승인 2015.06.29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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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70

일본군에 대패한 이여송은 툭하면 ‘퇴군’을 하려 했다. 유성룡이 그렇게 뜯어말렸지만 ‘가등청정이 몰려온다’는 소문을 듣고 개성에서 평양으로 물러나버렸다. 조선의 운명은 또다시 ‘바람 앞의 촛불’ 신세로 전락했다. 유성룡이 우려하던 사태였다.

▲ 이여송 앞에 무릎을 꿇은 유성룡은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일본군에 대패한 이여송은 퇴군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유성룡은 ‘퇴군의 불가함’을 역설했다. 그러자 이여송은 명나라 황제에게 올리는 상주문의 초고를 내어 유성룡에게 보였다. “적병이 한성에 아직도 20만이나 있어 중과부적입니다 … 신은 지금 병이 심하니 청컨대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게 하십시오.” 유성룡은 놀랐다. 일본군이 아직도 많다고 거짓말을 지어내 황제를 기망하는 상주문이었기 때문이다.

유성룡은 손가락으로 ‘적군이 20만’이라는 구절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적병이 20만이라니 웬 20만이오? 3만~4만도 못 되거든 무슨 20만이오?” 이여송은 유성룡의 말이 귀찮은 듯이 “20만인지 3만~4만인지 내가 알 수 있나? 너의 나라 사람들이 그렇다니까 그렇지”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곁에 섰던 장세작이 이여송에게 진언하되 “조선 놈들의 말을 들을 것 있소? 어서 퇴군하셔야 하오”라며 유성룡의 무리를 노려보았다. 순변사 이빈이 크게 분개하여 “퇴군이라니 안 될 말이오. 황제 폐하가 대군을 맡겨 보내실 때 한번 싸워보고 지면 곧 퇴군하라고 하셨소?”하고 나섰다. 장세작이 발을 들어 이빈의 등을 냅다 차면서 이렇게 호령했다.

“이놈들, 다 나가! 그렇게 퇴군하기를 싫어하는 놈들이 왜 부산에서 의주까지 한 번도 옳게 싸움도 못하고 달아나?” 어찌 됐든 이여송은 유성룡에게 “퇴군은 없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유성룡이 이여송의 진문 밖으로 나간 지 한시간이 채 못 돼 이여송과 그의 부하 제장들은 총퇴각을 하였다. 오직 부총병 사대수와 유격장군 모승선母承宣이 수백기씩을 거느리고 임진강을 지킬 뿐이었다.

이여송의 군사가 개성에 들어오자 민중은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접빈사 유성룡은 날마다 서신을 보내어 이여송에게 약속한대로 진군하기를 간청했지만 이여송은 들은 체도 아니하였다. 그러면서 군량 마초만 대라고 성화같이 재촉만 했다. 유성룡은 “명나라에게 원군을 요청한 게 강도단을 데리고 온 것과 같다”며 후회했다. 세간엔 ‘명군明軍의 해악이 일군日軍보다 심하다’는 풍설이 전파됐다.

애매한 태도 보이는 이여송

▲ 유성룡은 명군 졸개에게 채찍을 맞는 수모까지 당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러던 어느날, 이여송이 전군을 거느리고 개성에서 후퇴, 평양으로 물러나려 한다는 얘기가 유성룡의 귀에 들어갔다. 유성룡은 한번 더 퇴군의 불가함을 말할 작정으로 말을 타고 동파에서 개성으로 향하였다. 중로에 다다랐을 때 개성 쪽에서 명군 10여명이 질풍같이 말을 몰아오더니 유성룡의 일행을 보며 “유 체찰사가 누구냐?”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유 체찰사요”라는 유성룡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명군 중 두목인 듯한 자가 가죽 채찍을 들어 유성룡이 탄 말을 후려때렸다. 유성룡의 말은 불시에 변을 당했고, 채찍을 눈에 맞은 유성룡은 눈물을 흘렸다. 명나라의 하졸에게까지 멸시받는 조선의 처지를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이었다. 유성룡은 놀란 말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고개를 돌려 뒤따르는 명군에게 연고를 물으려 했다.

그러자 두번째 채찍이 유성룡의 면상을 향하여 떨어졌다. 두 눈이 아득하여 하마터면 52세 된 유성룡은 땅에 떨어질 뻔하였다. 명군은 유성룡의 등과 말을 수없이 때려 순식간에 개성부에 당도하였다. 이여송의 진문 밖에 도착한 명군은 유성룡을 마상馬上에서 끄집어내려 무릎을 꿇렸다. 곁에는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경기감사 이정형李廷馨이 꿇어 앉아 군량 거행을 태만히 한 죄로 이여송에게 힐책을 당하는 중이었다.

유성룡이 잡혀 온 것을 보고 이여송은 소리를 높여 “네가 일국 정승이 되어 황군의 군량 거행을 등한히 하였으니 네 죄가 죽어 마땅하다. 군법으로 시행할 테니 그리 알라!”라고 호령하였다. 유성룡은 이렇게 통곡했다. “잘못 되었소. 그러나 태만한 것은 아니오.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군량실은 배가 들어 올 것이오.” 호조판서 이성중과 경기감사 이정형도 참았던 분과 설움을 참지 못하고 통곡하였다.

명나라의 일개 육군제독에게 일국의 원로상국이 이런 치욕을 보게 되니, 참으로 통분한 일이었다. 일국의 원로수상이던 이가 천대를 당했음에도 조선 대관이란 무리는 자각자성하지 못하고 대명의존의 사대사상과 숭문천무하는 문약정치를 펼쳤으니, 탄식할 일이로다. 그러나 이 통곡은 의외의 효과를 내었다. 이여송은 유성룡의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동정심이 동했는지 부하 제장에게 이렇게 호령했다.

“너희들이 전년에 나를 따라 서하西夏를 정벌할 때에는 전군이 오래 굶어도 감히 돌아간다는 말을 내지 아니하고 마침내 대공을 이루었다. 그런데 조선에 와서는 군량이 떨어진 지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돌아가기를 주장하느냐? 너희들은 가고 싶거든 다 가거라. 나는 적을 멸하지 아니하고는 아니 갈 터이다. 나는 마땅히 말가죽으로 내 시체를 싸려 한다!”

명나라 제장들은 의외의 꾸지람에 이여송의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이윽고 강화로부터 군량을 실은 배 수십척이 서강西江에 들어왔다. 주리던 조선군사들에게도 양미를 배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여송이 퇴군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믿을 수는 없다. 그날 밤 이여송은 도지휘사 장세작을 유성룡에게 보내 주연을 베풀고 지나간 일(채찍으로 때리고 군법을 시행한다고 협박한 일)을 다 잊으라고 위안하면서 퇴병하지 않을 뜻을 확언하였다. 유성룡도 웃는 낯으로 마음을 털어버렸다.

유성룡의 통곡, 이여송에게 통하다

그런데 흉한 소식이 들어왔다. “가등청정이 함흥으로부터 양덕陽德 맹산孟山을 넘어 평양을 습격하려 한다”는 말이었다. 이여송은 퇴군할 핑계를 얻었다. 그는 유성룡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평양을 잃으면 대군의 귀로를 단절 당할 것이니 퇴군하지 아니할 수 없다.”

유성룡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뜯어말렸지만 이여송은 부하 왕필적 이여매에게 개성을 지키게 하고 이여송은 대군을 몰고 평양을 향하여 떠났다. 떠날 때 그는 접반사 이덕형에게 “대군이 가면 조선군은 고립무원할 것이니 조선군도 우리 대군을 따라 대동강 북안으로 피하자”고 말했다. 이덕형은 “조선군은 일보라도 후퇴할 수는 없소”라고 답했다. 이여송의 군사는 끝내 평양으로 가버렸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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