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도 웨지는 나에게 증오의 대상이다. 1만번을 넘게 연습을 했음에도 불만인 경우가 허다했다. 100% 정확성이 담보되지 않은 특수 웨지를 사용한 어프로치는 도음은커녕 무서운 무기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 58도 웨지에 집착한 수많은 시간이 연습을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한 공백기간이 된 셈이다.골퍼에게 “아이언의 종류는?”이라고 물으면 “3~9번, 샌드 웨지와 피칭 웨지 등 모두 9개”라고 답할 것이다. 100% 정답이다. 그런데 1990년대 초부터 세계적으로 웨지 신드롬이 일어났다. 클리블랜드 웨지, 핑 웨지 등이 그것이다.
필자의 사회 후배 S씨는 당시 골프채 판매의 승부인 드라이버에서 신종 웨지로 눈을 돌렸다. 미국에서 대량 수입해 국내 골프 클럽 시장에 도전했는데 대박을 터뜨렸다. 골프깨나 친다는 사람 가운데 이 웨지를 구입하지 않은 골퍼는 없을 지경이었다. 이 대박으로 그는 국내 골프업계 메이저급 사장이 됐다. 새천년에 들어 거의 모든 골프클럽 제조사가 별도의 웨지를 만들었다. 웨지도 수십 종류에 이른다. 첨단소재 개발로 비거리를 향상시킨 드라이버와 함께 특수 웨지의 등장은 골프 클럽 혁명이라 할 만하다.
웨지의 효용성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경우는 요즘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박인비, 최나연, 김효주, 김세영 등이 100야드 안팎 그린 공략 플레이에서 홀 2~3야드 이내로 접근시키는 장면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짧은 거리에서 컴퓨터 샷 같은 이들의 기량이야말로 LPGA 인기와 수준을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그 어떤 남자대회(PGA 투어)보다도 어프로치에 관한 한 LPGA가 확실히 한 수 위다. 거의 전부는 샌드와 피칭 외에 1~2개의 웨지가 더 있다.
그러나 주말골퍼 수준의 필자는 특수 웨지가 없다. 사실은 지난해부터 56도와 58도 웨지를 아예 빼버렸다. 특히 58도 웨지는 필자에겐 증오의 대상이다. 기존 56도 웨지 외에 5년 전 몇십만원의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그리고 닭장에 갈 때는 드라이버는 빼도 58도 웨지는 필수였다. 이 웨지연습만 1만번을 더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서 5~30야드 어프로치 때 “OK!(concede)”를 받은 적이 별로 없거나 불만인 경우가 허다했다. 되레 뒤땅, 토핑 등으로 순식간에 2~3타가 날아가곤 했다. 어느 순간인가, 볼을 오른쪽 발까지 놓고, 로프트 각을 형편없이 세워(아마도 45도 이하는 됐을 것이다) 러닝 어프로치식 치핑을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미스샷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58도 웨지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지난 수십년 동안 만만했던 피칭 웨지를 계속 썼더라면.
통상 피칭 웨지의 로프트는 48도, 샌드는 56도다. 아이언 번호 순대로 4도씩 차이지만, 둘은 8도 차가 난다. 필자의 경우 특수 웨지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80야드, 심지어 30야드, 10야드도 샌드가 아닌 피칭 웨지를 사용했고, 어프로치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기억이 없었다. 최근에야 깨달은 것은 58도 웨지에 집착한 수많은 시간과 연습이 차라리 연습을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 공백기간이었다는 점이다. 주말, 비즈니스 골퍼들의 생각이나 경험은 어떠한가. 과연 60야드에서 58도로 때리면 핀에 찰싹 달라붙었는가. 10야드에서 때렸을 때 틀림없이 핀 앞에서 정지했는가.
필자의 경우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고심한 끝에 모든 어프로치는 피칭을 선택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10야드 이내는 굴리고, 30야드가 넘으면 살짝 떠냈다. 3년 전과 지난해 올해 초까지의 스코어를 비교해 보니, 4타 이상이 줄었다. 물론 필자의 선택이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우리 선수들처럼 58도, 60도 웨지로 1야드의 오차를 줄이려는 첨단 시스템이 과연 주말 골퍼에게도 적용되는지는 냉정히 검토해볼 일이다. 100% 정확한 임팩트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로프트가 큰 웨지는 도움은커녕 나를 겨누는 무기로 돌변하는 경우를 수없이 겪었을 것이다. 아무튼 필자는 옛날의 피칭 웨지가 좋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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