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밥통 ‘혼란’을 짓다
권력자의 밥통 ‘혼란’을 짓다
  •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 호수 145
  • 승인 2015.06.10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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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장미의 이름 ❻

▲ 영화 속 베네딕트파에게 '웃음'과 '희극'이 금기시되듯 보수 세력이 지배한 우리 현대사에선 '긍정'이 용납되지 않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권력자와 정치인은 증오의 대상을 원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악령처럼 굴며 국민들에게도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공포를 주입하려 골몰한다. 이를 테면 개혁 세력은 보수 세력이 담당해왔던 우리의 현대사가 치욕과 오류 그리고 죄악으로만 이어졌다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보수 세력에 대한 증오를 확산시키는 데 힘쓴다. 객관적으로 우리 현대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독립국가 중 가장 확실한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정한 쪽으로 치우쳐 평가돼야 할까.

영화에 나오는 베네딕트파에게 ‘웃음’과 ‘희극’이 금기시되듯 보수 세력이 맡았던 우리 현대사에 대해선 조금의 ‘긍정’도 용납되지 않는다. 모두가 상대방 논리나 주장이 허용되면 곧 나라가 결딴난다고 주장한다. 나라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결딴나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정치인들은 자신과 다른 세력에 대한 증오를 퍼트리면서 자신들만의 권력을 공고화한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모두 국민과는 격리돼 그 위에, 혹은 자신들의 지지자 위에 군림하고 마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 장대한 수도원의 모습과 영락없이 닮았다. 수도원은 마을과 격리된 채 산꼭대기에 자리 잡아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암울한 소설 「1984년」에서 ‘빅 브라더’는 권력을 다지기 위해 외부 적들과의 불필요한 전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때론 있지도 않은 전쟁을 선전하기도 한다. 국민은 자신의 국가가 정말 전쟁 중인지 아닌지도 제대로 모른다. 전쟁으로 외부에 대한 증오·적개심·공포가 지속되는 한 내부의 ‘평화’는 유지된다. 그리고 내부 권력은 확대되고 공고화된다.

아주 오래되고 우울한 농담 하나가 있다. 변호사·의사·과학자·정치가가 모여 인간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로 설전을 벌였다. 먼저 변호사가 주장한다. “이브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설득한 것이 곧 변호사의 시초야. 그러니 변호사가 가장 오래된 직업이지.”
의사가 대꾸한다. “웃기는 소리. 그 이전에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 이브를 만든 게 누군데? 그건 우리 의사야.”
과학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담이 태어나기도 이전 ‘태초에 말씀이 있었나니 빛이 있으라’는 창세기 1장의 말씀도 모르는가? 그 빛을 만들어 낸 게 바로 과학자.”
듣고 있던 정치가가 점잖게 한심한 논쟁을 정리해 준다. “창세기 이전은 완전한 혼란이었지. 그 혼란을 만들어 낸 게 누구겠어? 바로 우리 정치가야.”

농담은 농담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혹시 권력자나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밥통’을 위해서 혹은 항상 혼란을 만들어야 하는 직업의식에 투철 하느라고 그런 걸까. 그래서 있지도 않은 악마를 만들어 내고 공포와 증오를 불러일으키며 혼란을 ‘제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설마 그럴 리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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