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도만호 정운은 마지막 적병의 주둔처를 깨뜨리려고 홀로 배를 저어 돌진하다가 적의 탄환에 맞아 쓰러졌다. 배를 젓던 군사들과 부하장수들이 놀라자 정운은 왼손으로 흐르는 가슴 피를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어서 저어라. 어서 저어라.” 하지만 그는 이 전투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순신이 치는 북소리는 다른 북소리보다 훨씬 컸다. 그 북소리를 들은 제장과 군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들었다. 배를 저어 노를 재촉하면서 적진을 헤치고 돌격해 격전을 치른 거다. 조선군의 필사적 맹공격을 견디지 못한 적군은 토굴 속으로 몸을 숨긴 채 머리만 내놓고 조총과 화살을 쐈다. 그러다가 조선군의 화살에 맞아 굴러 떨어지는 자도 있고 땅에 엎어지는 자도 있었다. 그러면 다른 군사가 나와서 토굴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러는 동안 6군데의 토굴이 피로 젖고 조선군 배도 피로 물들었다.
이렇게 종일토록 맞붙어 격전하는 동안 어느덧 석양이 됐는데, 부산선창은 온통 불과 연기뿐이다. 이따금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와 불꽃 사이로 이순신의 8척 웅장한 자태가 보일 뿐이었다. 갈수록 적군의 조총과 활 쏘는 게 줄어 해가 서산에 걸린 때엔 5군데의 참호토굴이 잠잠해졌다. 부산성 역시 성문을 굳게 닫고 조용해졌다. 적군이 아무런 항전도 못하는 처지가 된 거였다.
녹도만호 정운은 마지막 적병의 주둔처를 깨뜨리려고 홀로 배를 저어 돌진하다가 적의 탄환에 맞아 쓰러졌다. 배를 젓던 군사들과 부하장수들이 놀라자 정운은 왼손으로 흐르는 가슴 피를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어서 저어라. 어서 저어라. 이 부산 적군의 근거를 섬멸하여야 할 것이다. 어서 저어라. 어서 저어라.” 그때 또 다른 탄환 한개가 정운의 왼편 가슴을 관통했다. 사졸들이 정운을 안아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는 벌써 숨이 끊어졌다.
정운의 배가 노기 탱천하여 적진 중으로 들어가는 걸 본 이순신은 황급히 귀선돌격장 이언량에게 명하여 그를 구출하라고 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거북선이 들어갔을 때 정운은 벌써 죽었고 정운이 탔던 배에는 적군이 올라타 약 10인도 살지 못한 상태였다. 이순신의 휘하에 제일 무서운 장수가 조총을 맞아 죽는 것을 본 적군이 분기탱천한 결과였다. 이언량의 거북선은 좌우전후로 몰려드는 적선을 좌충우돌하여 막 부수어 버리고 정운의 녹도 병선을 끌고 나왔다.
정운의 시신을 실은 녹도 병선이 순신이 탄 대장선 곁으로 왔을 때 양국 함대는 사실상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하루종일 싸운 탓에 지쳤을 뿐만 아니라 이름이 높은 정운의 최후를 애도하기 위해서였다. 적군 쪽에선 오늘의 패전에 풀이 죽어 가만히 있었다.
불꽃 사이로 나타난 순신의 8척

순신은 죽은 정운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쇠를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순신과 이억기는 역풍과 파도를 헤치고 밤 삼경에 가덕도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절영도를 지나고서야 순신은 자리를 떠나 정운의 시신이 실려 있는 녹도 병선에 올라갔다. 상한 곳을 만지며 애통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순신은 정운의 영구 앞에 산해진미의 제수를 차려놓고 제사를 집행하였다. 순신이 지은 제문은 이러하다.
嗚呼 人生必有死 死生必有命 爲人一死 固不足惜 君獨可傷者 國運不幸 島人作孼 嶺南諸城 望風奔潰 長驅席捲 所向無前 千里關西 鑾輿播越 北望長慟 怒膽如裂 嗟我短拙 與君論難 披雲見曜 計定揮劍 戰艘相連 決死掛席 冒刃先登 四度報捷 是誰之功 恢復宗社 指日可期 豈意皇天不佑 毒丸遽及 彼蒼者天 理亦難究 回船更突 誓欲報怨 日且奄暮 風亦不順 未遂所願 平生之痛 豈過於此也 言念及此 痛若割肌 所恃者君 更將何爲 一陣將卒 痛惜無已 嗚呼 鶴髮在堂 已矣誰將 抱恨窮泉 曷時瞑目 嗚呼痛哉 才不展時 位不滿德 邦家不幸 軍民無福 如君忠義 古今罕聞 爲國忘身 有死猶生 長恨世間 誰識我心 念哀致誠 遙奠一酌 嗚呼慟哉
아아, 인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고 사생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번 죽는 것은 아까울 게 없지만 유독 그대 죽음은 마음 아프구나. 국운이 불행하여 섬 오랑캐가 재앙을 일으켜 영남의 여러 성이 바람 앞에 무너지고 적들이 몰아쳐 온 나라를 석권하니 향하는 곳마다 막을 자가 없었다. 1000리 관서로 임금의 수레를 옮기고 북쪽 하늘 바라볼 때마다 길게 울며 분노하여 간담이 찢어진다. 내가 모자라고 서툴러 그대와 함께 의논하니 구름이 쪼개져 밝은 빛이 비치듯 하였다. 계책을 정하고 칼을 휘두르며 배를 이어 나갈 적에 죽음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나아갔으니 네번이나 이긴 싸움 그 누구의 공이겠는가! 종사를 회복할 날도 멀지 않은데 어찌 뜻했겠는가. 하늘이 돕지 않아 탄환에 맞았구나. 저 푸른 하늘도 또한 이유를 알기 어렵구나. 배를 돌려 다시 싸워 원수 갚자 맹세했으나 날은 또한 어둡고 바람조차 불순하여 소원을 못 이루니 평생에 통분함이 이보다 더할쏜가. 여기까지 쓰고 나니 살 에듯 아프구나. 믿을 바 그대인데 이제는 어이할까. 진중의 모든 장졸 원통하게 여긴다네. 아아, 집에 계신 어버이는 누가 장차 모실 건가. 황천까지 미친 원한 언제 눈을 감을 건가. 아아, 슬프도다! 그 재주 다 못 펴고 덕은 높되 지위 낮아 나라의 불행이요 군사 백성 복이 없다. 그대 같은 충의는 고금에 드물거니 나라 위해 던진 그 몸 죽어도 살았구나. 세상에 깊은 원한 누가 내 마음 알아주랴. 지극한 정성으로 한잔 술을 바친다. 아아, 슬프도다!
정운 죽음에 슬퍼하는 이순신
축문을 읽기를 다하매 순신은 뜨거운 눈물을 뿌리며 통곡했다. 전군 장졸들도 통곡하여 곡성이 산해를 실색하게 하였다.
故忠壯公 鄭運의 忠烈은 觀於對李忠武公之問과 與其自誓劍銘에 已知其卓絶이온 況偉績大節이 何等凜凜가 薄暮層溟에 促櫓先登하여 使遮海之敵艘로 不得相抗하고 而運則殉矣하니 似此忠義는 可與日月로 爭光이로다
“충장공 정운의 충렬은 충무공의 물음에 대한 대답과 스스로 맹세한 검명劍銘을 살펴보면 이미 그 탁월함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 위대한 업적과 큰 절개는 어찌 그리 늠름한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어둠이 깔리는 가운데 노를 재촉해 앞장서서, 바다를 가로막고 있는 적선들이 서로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고 자신은 숨을 거두었으니 이 같은 충용은 일월과 함께 빛을 다투리라.”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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