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62

적군이 꽁무니를 뺐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순신은 전 함대를 가덕도 북안의 서변에 숨겼다. 그후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과 광양현감 어영담에게 가덕도 밖으로 나가 숨어서 양산강 안에 정박한 적선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하지만 적의 소선 4척이 나와 동래 몰운대로 간 것 외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적선이 부산으로 철수한 것으로 판단한 순신은 그날 밤을 천성보에서 지내고 29일 첫닭이 울 무렵에 행선해 장림포(부산시 사하구 장림동)에 다다랐다.
마침 대선 4척과 소선 2척에 나눠 타고 양산강에서 나오던 30여명 적병은 순신의 함대를 보자마자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자 원균은 공선 5척을 산산조각내 버렸다. 적선을 보면 겁을 내던 원균이 공선을 보자 ‘호박국에 힘쓰는’ 격으로 달려든 것이다. 제장들이 모두 원균을 비웃었다.
밤을 지내는 중 순신은 이억기와 원균을 불러들여 두 가지 문제를 언급했다. 부산을 먼저 치느냐, 김해 양산의 두강을 먼저 치느냐였다. 원균은 두강을 먼저 치자고 주장했다. 이억기는 “우리는 군의 지휘권을 좌수사 영감에게 양도했기 때문에 그 명령대로 청종하겠다”고 말했다. 원균도 다시 이억기의 의견을 좇아 순신의 모략대로 하기로 표변하였다. 그렇게 밤이 깊도록 토의한 결과 순신의 말대로 부산을 총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인 9월 1일은 경상감사 김수의 군사와 협력해 부산의 적을 맹공격하자고 약속한 날이었다. 순신은 첫닭이 울 무렵 출발했다. 순신의 함대가 전군前軍, 이억기의 함대가 중군中軍, 원균의 함대는 후위에 섰다. 도합 180여척이 서로 꼬리를 연결하며 동쪽으로 항해를 했다. 몰운대 앞바다에 다다르니 때는 진시였다. 갑자기 동풍이 강하게 일어나 물결이 산같이 솟아 일렁거렸으나 그래도 배를 저어 동으로 동으로 강행 진군을 거듭했다. 그 가운데 녹도만호 정운이 먼저 적을 맞아 깨뜨렸고, 다대포 앞에 이르러선 적의 대선 8척을 만나 부숴버렸다. 서평포(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앞바다에선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이 적의 대선 10척을 부쉈다. 절영도 앞바다에서는 적의 대선 2척이 서 있는 것을 조방장 정걸이 맞아 싸워 다 깨뜨렸다.
선제공격 회의 결과는…
이렇게 몰운대에서부터 절영도 앞바다까지 오는 길에 적의 대선 24척과 그 배에 탄 적병 수천명을 모조리 당파했다. 순신은 함대를 절영도 앞바다에 유진한 뒤 부산선창에 있는 적선의 동태를 살폈다. 보고가 들어온 즉슨 대소합 500척이나 늘어섰다고 하며 이편의 탐망선이 온 것을 보고 적의 선봉인지 하는 대선 4척이 따라 나오더라고 하였다. 적선이 500여척이란 말을 들은 원균은 크게 놀랐고 이억기까지도 순신의 앞에서 난색을 보였다. 200척도 안 되는 우리가 500척의 적선과 싸우는 것이 어림없는 일이라는 거였다.

이순신의 손에 들린 독전기가 부산진을 가리키자 우부장 녹도만호 정운, 좌부장 낙안군수 신호, 귀선돌격장 이언량, 전부장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 중위장 순천부사 권준 등 다섯 장군이 병선을 몰고 앞장서 풍우같이 달려 들어 적의 선봉인 대선 4척을 순식간에 때려 부수고 화전을 쏘아 불살랐다. 연기와 불꽃이 하늘로 오르고 대포소리는 산과 바다를 뒤집는데 살아남은 적병들의 곡성이 진동했다. 물에 뛰어드는 적병들은 갈가마귀떼같이 헤엄을 쳐서 육지로 올라서 달아났다.
이것을 보고 순신의 휘하 삼도 전군 166척은 기세를 얻어 예기 충천했다. 북을 울리고 기를 휘두르며 장사진을 벌였고, 죽음을 무릅쓰고 부산진을 향하여 노를 재촉하였다. 모든 함대가 부산 포구에 들어서니 부산진성의 동쪽 5리쯤 되는 바닷가에 둔박한 적선 470여척은 감히 대항하지 못했다. 순신은 곧바로 나아가 470여척의 적선을 과감하게 맞닥뜨려 처부수라고 엄명하였다.
수전으로는 당해내지 못할 것으로 여긴 적군은 배를 버리고 성안으로 달아나 들어갔다. 산으로 기어 올라가 총과 활을 쏘는 적병도 있었다. 적들은 안예재상安藝宰相 모리휘원의 군사가 3만인이요, 각처에서 모여든 군사가 또 6만~7만이어서 약 10만의 대병이었다. 적은 순신 함대의 총격에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만일에 부산의 근거지를 상실한다면 조선병탄의 대사업은 영영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러하여 모리휘원은 전군을 독려하여 조총과 시석을 막 퍼부었다.
성안으로 도망가는 적군들
그러나 거북선이 선두에서 횡행하며 충돌을 멈추지 않았다. 순신과 이억기의 제장선은 죽기를 무릅쓰고 사납게 돌진했다. 각양 지ㆍ현자 및 승자총환과 장편전 유엽전이며 천ㆍ지자 대장군전과 화전 궁노로 치열하게 맞붙어 큰 싸움을 하였다. 그 결과, 근 500척에 달하던 적함 여기저기 불이 일기 시작했다. 경각간에 100척이 훨씬 넘는 수가 불이 붙어 100여개의 불기둥과 연기 무지개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어떤 곳은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고 바닷물은 끓어오르는 듯하여 더위가 여름날같이 심하여졌다.
이편 사졸들 중에도 적의 탄환과 화살에 맞아 붉은 피를 품고 죽거나 넘어지는 자가 많았다. 순신은 친히 시석을 무릅쓰고 손수 북을 울리고 기를 휘둘러 싸움을 재촉하였다. 순신이 치는 북소리는 다른 북소리보다 훨씬 컸다. 그 북소리가 들릴 때마다 제장과 군사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격전했다. 순신에 대한 충정이 묻어나는 전투였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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